문명의 대전환은 언제나 하나의 '촉진제'를 발명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농업혁명은 씨앗과 마을이라는 정착의 단위를, 산업혁명은 공장이라는 생산의 단위를, 정보혁명은 개인용 컴퓨터라는 연산의 단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세계화를 폭발적으로 가속시킨 것은 다름 아닌 컨테이너였다.
컨테이너는 단순한 철제 박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표준화된 연결의 단위, 즉 서로 다른 세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문명의 인터페이스였다. 컨테이너가 만들어낸 효율과 표준 덕분에,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물건을 며칠 안에 받아볼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컨테이너는 전 지구적 교환 질서를 재설계한 '보이지 않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하는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기후위기는 되돌릴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양극화는 사회 내부의 균열을 키우며, AI와 자동화는 인간 노동의 의미, 나아가 인간 존재의 이유 자체를 흔들고 있다.
우리는 다시금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문제는—새로운 시대를 열 '촉진제'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대전환을 위한 새로운 컨테이너가 필요하다.그것은 기후위기, 양극화, 기술 위협을 동시에 다루는 사회적 실험 단위이자, 생태·사회·기술이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21세기형 문명 컨테이너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것을 살림마을(Salim Village)이라고 부른다.
살림마을은 단순한 친환경 공동체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주거환경과 일 그리고 의식의 전환을 위한 기본 단위를 말한다.
이곳에서는 에너지와 식량이 자급되고, 사람들은 화폐보다 신뢰로 연결되며, 기술은 효율이 아닌 돌봄과 협력을 위해 설계된다. 그리고 모든 활동은 조각탄소감축량(MCC)으로 정량화되어, 살림의 가치를 경제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살림마을은 '국가 단위의 선언'이 아닌 '생활 단위의 실천'으로 기후행동과 경제전환을 동시에 검증할 수 있는 살아있는 플랫폼이다.
컨테이너가 세계의 물류를 바꿨듯, 살림마을은 우리의 삶의 논리(Logic) 자체를 바꿀 것이다.
살림마을 안에서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실증되고,
공동체가 함께 자급자족하며,
각자 몰입을 통해 충만한 삶을 깨닫고,
그 충만함이 넘쳐 의미와 창조로 확장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미래사회의 모습 아닐까?
만약 살림마을의 구성원들이 지금과는 다른 경험을 만족과 의미를 경험한다면,
그 확산은 컨테이너 처럼 광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세상은 살림로직이 지배하는 지속가능한 새로운 세상으로 전환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