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의 무게를 따져보면,
'살아간다'기보다 '살아낸다'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고, 출근하고, 일하고, 소비하고, 경쟁하며 하루를 쫓아간다.
그 사이 자연은 병들어가고, 인간은 고립되며, 마음은 점점 피폐해진다.
우리가 '산다'고 믿는 이 삶이,
사실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시키고 있는 건 아닐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생명을 갉아먹는 톱니바퀴가 되어버렸다면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오랜 세월 배워 왔던 '사는 법'은
더 많이 벌고, 더 높이 오르고, 더 빠르게 성장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사회는 성공의 척도를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서,
진정 무엇으로 충만해지는 지
그렇게 달리면 뭔가 있을 줄 알았지만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해체했고,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생태계를 파괴했으며,
자유라는 구호 아래 개인을 고립시켰다.
우리는 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죽여왔다.
살림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살림은 단지 집안을 돌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살게 하는 힘', 곧 생명을 순환시키는 행동이다.
밥을 짓고, 옷을 빨고, 집을 정리하는 일상의 행위 안에는
생명을 돌보는 철학이 담겨 있다.
살림은 나를 중심으로 한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생태계의 리듬에 참여하는 삶이다.
우리 대부분은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면,
살리는 인간은 생명을 위해 존재한다.
전자가 소비의 주체라면,
후자는 순환의 참여자다.
'살린다'는 것은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끊어진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잇는 일.
그 연결 위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풍요가 피어난다.
살림은 소유의 논리가 아니라 순환의 논리다.
죽임의 경제가 아니라 살림의 경제,
지배의 로직이 아니라 돌봄의 로직이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당위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붕괴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죽이는 방식으로 살 수 없다.
이제 인류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살기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살려내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생명을, 다른 존재를, 그리고 나 자신을 살려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윤리이자,
다음 문명의 방향이다.
먹는 것 하나에도 생명의 순환을 생각하고,
입는 것 하나에도 노동의 존엄을 헤아리며,
쓰는 것 하나에도 자원의 한계를 기억하는 삶.
그것이 살림의 실천이다.
우리는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살리는 존재다.
살리는 만큼, 우리는 산다.
이 단순한 진리를 되찾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 세상에서는
성장이 아니라 지속이,
소유가 아니라 나눔이,
경쟁이 아니라 돌봄이
가치의 중심에 선다.
그곳에서야말로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은 이제 명확하다.
우리는 무엇을 살리며 살 것인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곧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