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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도리주인장 Jan 21. 2024

겨울비와 안개가 내려앉을 때는 홍가리비찜을.

응원의 홍가리비찜을 대접하고 싶어요.


하루가 무겁게 내려앉는 날이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오고 안개가 차분히 내려앉은 날이었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직장 동료 H가 결혼식을 앞두고서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아 울적해했다. 알지. 알지. 그때가 유달리 힘들지... 

유독 오지랖을 피우고 싶은 날이었다. '혹시 내가 요리 하나 해주고 싶은데... 우리 집 올래?' 



축축 처지는 날씨에 H에게 뭔가 위로를 해주고 싶었나 보다. 둘이 오후 반차를 내고 잠깐 시장에서 들러 2kg에 8천 원 하는 홍가리비를 사 왔다. 홍가리비는 해감이 따로 필요 없는 조개인 만큼 요리하는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표면을 문지르는 데만 조금 시간을 들이면, 제철 홍가리비찜을 먹을 수 있다. 

조개구이집에 가면 제철이 아닌 조개들이 뒤섞여 맛있는 조개와 맛없는 조개가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12월부터 겨울 내내 홍가리비가 맛있는 계절이니, 조개구이집에서 질긴 조개를 먹는 대신 가까운 시장에 들러 국산 홍가리비를 사는 것을 제안드려본다. 


특히 홍가리비찜은 초보자도 요리를 하기 좋은 음식인데 따로 해감이 필요 없다. 먼저 냄비에 물을 자작하게 넣고 찜기망을 넣는다. 그러고는 겉표면만 칫솔로 문질러 찜기망에 올린다. 소주를 한 바퀴 둘러 잡내를 없애주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6분! 6분만 끓여주면 된다. 너무 짧다 싶어도 8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너무 많이 쪄버리게 되면 조개 안의 수분이 전부 찜기 아래로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6~8분간 찌게 되면 찜기 아래에 뽀얀 육수가 나와 있다. 이걸 한 숟갈 떠먹어보셨으면 좋겠다. 세상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이 육수는 잠시 보관해 두었다가 스파게티를 삶아 봉골레 파스타를 해 먹으면 좋다. 가리비만 먹으면 헛헛할 수 있으니, 육수를 활용해 파스타를 만들어 탄수화물까지 든든하게 채우자.



홍가리비 술찜에 어울리는 술은 다양한 종류가 있겠지만, 이번에는 화이트 와인을 대접했다. 와인은 정말 수도 없이 종류가 많아서 사실 추천을 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 보통 인터넷에서 와인을 검색해 가도 사는 곳 주변의 와인샵에서 팔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 와인을 무난하게 골라보는 룰은 있다. 



데일리샷 와인 제품설명 예시

1. 레드와인 or 화이트 와인

2. 가격대

3. Taste

(4. VIVINO 평점, 5. 품종)


와인샵에 가면 먼저 레드 와인을 찾는지, 화이트 와인을 찾는지 물어본다. 그다음은 가격대이다. 요즘엔 2~3만 원 대이면 괜찮게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다음 내가 원하는 와인을 한번 더 좁힐 수 있는 것이 바로 Taste이다. 바디, 당도, 산미를 정해서 말해주면 직원이 훨씬 쉽게 추천해 줄 수 있다. 특히 화이트 와인의 경우는 당도와 산미에 선호도가 달라진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바디는 가벼운 경우가 대부분이니 당도와 산미만 잘 생각해서 가면 된다. 추가로 VIVONO 평점이 4 이상이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와인이어서 아무래도 실패할 확률이 적다. 마지막으로 품종으로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을 수도 있는데, 와인을 즐겨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으니 이는 나중에 레드 와인을 다룰 때 말하고자 한다. 


홍가리비찜에는 감압식 증류주도 잘 어울리지만, 이번에는 2만 원 대의 당도는 1, 산미는 3인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음식의 맛을 적당히 돋워주면서 어울렸다. 비린맛이 강하면 강할수록 산미가 강한 것이 잘 어울리는데, 그만큼 음식의 풍미를 가릴 수 있어 밸런스를 맞추어가며 술을 고르면 좋다. 홍가리비찜은 쪄놓으면 제철의 달큰함이 입안에서 톡 터진다. 그래서 술 자체는 달 필요가 없다. 홍가리비의 맛에 보조만 잘 맞추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홍가리비와 화이트와인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1인분을 해낼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너무 일이 휘몰아쳐서, 혹은 압박감 때문에, 또는 체력이 현저히 떨어져 버려서 1인분의 힘이 금세 소진되어 버린다. 

이럴 때 나는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제철의 홍가리비와 같은 음식으로 응원을 하고 싶다. 지금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된다고, 이거 먹고 한 발짝만 더 나아가 보자고. 응원의 음식으로 1인분의 힘을 채워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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