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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내가 어떤 경지에 오르지 못할 지라도

by 월영


1.

전남 화순.광주민주화운동 때 일지 같은 걸 보면 화순에서 광주로 진입하려던 이야기들이 있어서 궁금했다. 광주 근처 나주와 담양, 영광과 장성등은 가봤는데 화순은 가보질 않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을 읽고 생겨난 남도에 대한 숙제 같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대학시절 인상깊게 읽었던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천불천탑 설화가 서려 있는 운주사가 그곳에 있었다. 생일날 연차를 내서 네 시간 넘게 차를 몰고 그 곳에 갔다.


2

운주사는 거의 폐사 되었다가 1900년대 초반에 다시 중건한 사찰. 그 탓에 옛절이 주는 고풍스러운 멋은 다소 미비했다. 운주사 한켠에 있는 과거 중건 전의 사진들을 보니 사찰 주변에 나무도 거의 없었고 듬성듬성 탑들과 석불들만 외따롭게 있는 풍경이었다.


장길산의 천불천탑. 와불이 일어나고 미륵불이 오면 세상이 바뀐다는 그 내용이 꽤나 강렬했다. 막상 도선국사가 절을 충건할 때 올라서 봤다는 불사바위에서 보니 지금의 운주사 자리는 어떤 역성혁명의 기운을 담고 있기에는 협소한 감이 있었다.


다만 묘자리로 운주사 터는 좋았을 듯. 사찰 주변 산 중턱 곳곳에 묘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 묘들은 언제 조성된 건지 잘 감이 오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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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들은 세련미나 정교한 매력은 없었다. 자료들을 찾아보니 형식이 고려때 걸로 추정된다는 정도 외에는 자세한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화순에 와서 운주사와 화순 일대를 돌아다녀보니 과거의 석공들이 수련련하는 지역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는 화순고인돌공원에 가서 고인돌 역사가 기원전 2500년에서 2000년 무렵이라는 걸 보고 상상해본 것이다.


고인돌 공원 지역에도 채석장이 있었고 운주사 주변에도 채석장이 있었다. 화순지역 일대의 지질과 문헌들을 더 확인해보면 내 추정이 합리적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당일치기 여행자에겐 시간이 없었다.


운주사 경내를 슬렁거리면서 돌을 다루는 기술들이 고래부터 전승되었고 그런 것들이 문명이 개화하면서 일종의 석공 길드가 조직, 그들의 습작들이 운주사 천불천탑의 기원은 아니었을까? 라고 개연성을 부여해봤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게 또 역사유적을 가 보는 재미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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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하촌이 없는 것도 운주사의 특징이었다. 그만큼 관광객이나 운주사의 신도들이 많지는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운주사 석불은 '장길산'을 읽지 않았다면 나처럼 과도하게 의미부여를 하기 어려운 것일수도 있다. 석탑들의 규모도 꽤 큰 편이지만 예술작품으로서의 세밀한 미적 감각은 담긴 작품들이라 평가하긴 부족해 보였다. 훈련생들의 습작 느낌이 났다. 온전한 석불을 만들기 위한 연습과 수련의 흔적들이 더 크게 다가왔다 .


하지만 그런 성글지 못한 일종의 미완의 석불들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초심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처음 그 길을 들어선 이들이 아직 익숙치 않은 기술로,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안목으로 오직 열정 하나만으로 뭔가의 경지에 들고자 하는 뜨거움들, 혹은 순수함들이 거기에는 담겨있었다. 그런 것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내가 어떤 경지에 오르지 못할 것임을 알아서이다. 결과는 다르지만 시작은 같은 지점. 그걸 확인하는 데서 오는 위로와 위안이 있었다.


5.


모처럼 DSLR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었다. 비록 살아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수백년 혹은 천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온갖 생명의 소멸을 천지사방 사계절의 순환을 겪었을 석불들의 모습은 그윽하니 감탄스러웠다. 그게 어쩌면 태어난 날은 내가 기억하더라고 결국 죽은 날은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인간의 어떤 한계를 담담히 다독여주었다. 그래서 그런 나의 태어남을 축하해준 여러 인연들을 위해 좀더 경건한 마음으로 석불들을, 석탑들을 사진에 담아봤다.


불상들의 표정처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 여기서 오는 일시적인 만족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오고가는 숱한 시간과 일상들 속에서 내 생명의 무탈하고 무난한 하루에 감사함 아닐까.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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