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완성한 시장, 인간이 복귀할 자리
실리콘밸리 현장은 현재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하는 듯하다.
AI 에이전트가 모든 시장을 재구성한다.
상품 기획, 광고, 물류, 고객 관리에 이르기까지,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상거래를 완성하는 ‘휴먼 프리 커머스(Human-Free Commerce)’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논의되는 미래는 자동화된 효율이 아니라, 인간이 경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다.
이 변화는 한국 사회에도 곧 닥칠 현실이다.
특히 소상공인과 도시경제는 지금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플랫폼 중심의 시장 구조는 이미 개인의 영역을 잠식했고,
도시 곳곳의 상권은 신도시 개발과 디지털 전환의 압력 속에서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AI 전환에 대한 기술 논의는 넘쳐나지만, 소상공인의 대응 전략과 정부의 정책 방향은 여전히 비어 있다.
AI 시대의 혁신은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인간적 경제를 복원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 3부작은 그 질문에서 출발했다.
AI가 시장을 자동화할수록, 인간은 어디에서, 어떻게 복귀할 수 있을까?
그 복귀의 세 단계는 명확하다.
1부는 개인의 복귀, 2부는 고용의 복귀, 3부는 도시의 복귀다.
메이커의 부상에서 시작해, 고용의 재편을 거쳐,
도시라는 공간적 생태계로 귀결되는 이 연재의 목적은
AI 시대의 경제를 인간의 손과 감각, 관계의 언어로 다시 읽어내는 것이다.
AI가 완성한 이커머스, 인간이 완성할 시장
AI가 이커머스를 ‘완전 자동화’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상품 기획, 가격 책정, 마케팅 문구, 고객 응대, 재고 관리, 물류 최적화까지—
모든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을 제거하는 것이 혁신의 척도가 되었다.
Salesforce의 Agentforce, Amazon의 Project Amelia, Shopify의 Sidekick.
모두 ‘휴먼 프리 커머스(Human-Free Commerce)’, 즉 인간 없는 상거래를 지향한다.
실리콘밸리의 비전은 3명이 운영하는 1억 달러 기업,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0명이 운영하는 자율 상거래 시스템이다.
이커머스의 발전사는 겉으로는 기술 혁신의 역사지만,
그 이면은 인간의 순차적 자기 소거(Sequential Self-Elimination)의 과정이었다.
2010년대 1차 소거는 오프라인 소매업의 몰락이었다.
“디지털 전환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구호 아래,
동네 상점과 백화점, 대형마트가 사라졌다.
2020년대 2차 소거는 온라인 셀러의 위기로 이어졌다.
플랫폼의 AI가 상품을 기획하고 자동 큐레이션을 수행한다.
개인 셀러의 수익은 급감했고, 플랫폼의 PB 상품이 판매 주체를 흡수했다.
이제 곧 다가올 3차 소거는 디지털 전문가의 시대다.
마케터, 데이터 분석가, UX 디자이너, 개발자조차
에이전트형 AI의 자율 기획과 운영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이처럼 자동화는 효율을 높였지만, 시장에서 인간을 밀어냈다.
기술은 거래를 완성했지만, 시장의 인간성을 제거했다.
그렇다면 이 미래에서 팔고 싶은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
모든 소거의 끝에는 복귀가 있다.
AI가 비워놓은 자리를 다시 채우는 주체가 등장한다.
그 이름이 바로 메이커다.
메이커는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기술과 인간의 경계를 다시 잇는 존재다.
이커머스가 인간을 소거한 자리에서,
메이커는 다시 ‘인간이 개입하는 상거래’를 복원한다.
그 방식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창작형 메이커.
그는 ‘만드는 과정’을 시장의 중심으로 되돌린다.
공방의 온도, 손끝의 감각, 도구의 소리가 곧 브랜드의 스토리가 된다.
생산과 유통이 분리되었던 산업화의 논리를 거부하고,
‘만들면서 판다’는 인간적 속도를 회복한다.
둘째, 경험형 메이커.
그는 상품을 이야기와 경험으로 바꾼다.
플리마켓, 팝업스토어, 시음회 같은 공간에서 소비자는 물건이 아니라 감정을 산다.
브랜드는 공연처럼 연출되고, 구매는 체험이 된다.
인간의 감각과 즉흥성, 우연의 즐거움이 디지털 효율을 넘어선다.
셋째, 공동체형 메이커.
그는 관계를 만든다.
협동조합형 로컬 마켓, 제작자 중심 편집숍, 회원제 직거래 커뮤니티—
그는 시장을 단순한 거래의 장소가 아니라 신뢰의 네트워크로 재구성한다.
‘커넥터형 메이커’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며,
소비를 참여의 형태로 바꾼다.
AI가 이커머스를 완성시킬지 몰라도,
인간은 여전히 시장을 완성한다.
기계가 예측하지 못하는 감정, 계획되지 않은 만남, 계산되지 않은 신뢰—
그것이 메이커가 만들어갈 다음 시장의 질서이자,
이커머스 이후의 인간적 경제다.
휴먼 프리 커머스 시대, 일자리는 어디로 갔는가
현재 실리콘밸리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휴먼 프리 커머스(Human-Free Commerce), 즉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상거래로 이동하라.
AI 에이전트는 상품을 기획하고, 가격을 책정하며, 마케팅 문구를 만들고, 고객 응대와 운영까지 대체하고 있다.
문제는 명확하다. 인간이 빠져나간 시장에서 고용은 어디에 남는가?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이커머스가 실제로 어떤 고용 효과를 만들어왔는지 냉정하게 정산해야 한다.
이커머스의 초기 약속을 기억하자.
오프라인 리테일의 고용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 근거는 세 가지였다.
첫째, 플랫폼 내부의 고용 증가.
둘째, 개인이 온라인 셀러로 진출하며 만들어낼 자영 고용.
셋째, 오프라인 상인의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새로운 일자리였다.
이제 그 약속을 검증해 보자.
첫째, 플랫폼 내부 고용은 감소 중이다.
AI 자동화로 고객 응대, 광고 운영, 데이터 분석 인력이 빠르게 줄고 있다.
둘째, 개인 셀러의 고용 효과도 사라지고 있다.
AI 큐레이션과 PB 확장이 개인 셀러의 시장을 흡수했다.
세 번째만이 남았다. 오프라인 상인의 디지털 전환.
하지만 여기도 조건이 있다.
AI 에이전트가 이커머스의 가치 사슬 전체—기획, 생산, 마케팅, 판매, 물류, 고객 관리—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 기획과 가격 책정은 데이터 예측으로,
마케팅은 생성형 콘텐츠로,
판매와 결제는 자동화된 알고리즘으로,
물류는 로보틱스와 챗봇으로 대체된다.
즉, 디지털 상거래의 대부분은 인간 없이 작동 가능한 상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바로 창의적 생산과 감각적 경험의 단계다.
제품을 실제로 제작하고, 공간에서 체험을 설계하며,
소비자와 신뢰 관계를 맺는 과정은 여전히 인간의 손과 감각에 의존한다.
기계는 이미지를 만들 수는 있어도, 만드는 사람의 온도와 맥락은 재현할 수 없다.
따라서 고용의 증가는 디지털 영역이 아니라,
오프라인의 제작·체험·관계 기반 생산 영역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휴먼 프리 커머스 시대의 고용 구조다.
AI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는다.
고용의 장소를 바꾼다.
디지털 전환이 일자리를 온라인으로 옮겼다면,
AI 전환은 일자리를 다시 오프라인의 현장으로 되돌린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디지털 전환 지원이 아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셀러의 메이커 전환 지원이다.
즉, 단순 판매자에서 제작자·기획자·체험 설계자로의 전환을 돕는 일이다.
공방형 창업, 지역 생산 기반, 협동조합형 유통 같은 오프라인 제작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AI가 시장의 효율을 완성할수록, 인간의 일은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영역으로 밀려난다.
그곳이 바로 새로운 고용의 프런티어다.
미래의 고용정책이 진정한 전환을 이루려면,
디지털 전환이 아니라 인간의 복귀, 메이커의 부활을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휴먼 프리 커머스 시대의 진짜 고용 성적표다.
휴먼 프리 커머스 시대, 인간이 돌아올 도시를 다시 설계하라
AI가 상거래의 전 과정을 자동화하며 인간을 밀어내고 있다.
1부에서 우리는 이 흐름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주체, 메이커를 보았다.
그는 인간의 손과 감각이 개입하는 제작·경험·관계의 영역을 복원한다.
2부에서는 이러한 전환이 고용의 복원과 직결된다는 점을 살폈다.
AI가 가치사슬을 자동화할수록 인간의 일은 디지털이 아닌 물리적 공간—
공방, 거리, 그리고 도시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그 메이커들이 어디에서, 어떤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메이커 경제의 핵심은 개별 창작자와 그들을 지탱하는 공간적 생태계다.
하나의 메이커는 홀로 존재할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창조는 언제나 집단적 기반 위에서만 성장한다.
그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도시다.
다양한 기능이 밀도 있게 얽히고, 우연한 만남이 일어나며,
생산과 소비가 가까운 거리에 공존할 때 도시의 창조력은 폭발한다.
AI가 효율을 완성할수록, 도시는 오히려 비효율을 품은 장소로서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다.
메이커가 활동하는 도시는 단순히 가게와 공방이 많은 도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는 개인의 창작이 곧 공동체의 실험이 된다.
AI가 모든 것을 계산해 버린 시대에,
도시는 계산되지 않는 것들의 경제를 복원하는 유일한 무대가 된다.
이제 도시의 목표는 성장이나 확장이 아니라 회복과 재생이다.
도시는 더 이상 생산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창조적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경제의 중심이 데이터에서 제작으로, 효율에서 감성으로 이동할 때
도시는 기술과 인간을 다시 연결하는 플랫폼이 된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창작, 판매, 관계의 순환이 곧 새로운 상거래의 형태이며,
AI 이후 시대의 인간적 경제다.
그렇다면 도시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까.
첫째, 도시를 메이커 단위로 분절하라.
거대 단지보다 작은 단위의 생산거점—공방 거리, 협업형 마켓, 공유 작업소—가 필요하다.
둘째, 건축을 재생의 언어로 바꿔라.
철거보다 개조, 대체보다 복원.
메이커와 시민이 함께 공간을 수리하며 스스로 도시를 만든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셋째, 상권을 커뮤니티로 전환하라.
소비의 장소를 관계의 장소로 바꾸는 것이다.
로컬 브랜드, 협동조합, 공유공간은 도시경제를 인간적 네트워크로 되돌린다.
넷째, 도시의 시간성을 회복하라.
빠른 개발보다 오래된 장소의 의미를 존중하라.
그 속에서만 새로운 이야기가 자라난다.
결국 도시란 창조의 최종 무대다.
AI가 인간을 시장에서 밀어냈다면, 도시는 인간을 다시 경제로 불러들인다.
메이커의 생태계는 도시의 물리적 형태와 문화적 질서 속에서 자란다.
창의적 도시란 곧 사람이 개입할 여백이 남아 있는 도시,
즉 자동화의 반대편에서 인간의 손과 감각이 머무는 곳이다.
그곳이 바로 휴먼 프리 커머스 시대 이후,
인간이 다시 경제의 주체로 복귀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