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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역설: 기업 호황, 도시 불황

by 골목길 경제학자

거제의 역설: 기업 호황, 도시 불황


어제 조선일보가 보도한 거제 경제 심층 분석 기사는 “조선은 호황인데, 도시는 불황”이라는 ‘거제의 역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LNG 운반선 수주로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수천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정작 거제의 청년 인구와 고용은 급락하고 상가 공실률은 전국 최고를 기록한다. 이 괴리는 조선업 호황의 이익이 지역 사회로 흘러가던 낙수효과가 고용과 상권이라는 두 개의 핵심 고리에서 모두 끊어졌기 때문이다.


청년 인구와 고용의 붕괴

겉으로는 호황이지만, 거제시는 도시의 미래를 좌우할 청년 인구와 일자리에서 급격한 쇠퇴를 겪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거제시 20·30대 인구는 46% 감소했다. 과거에는 원청과 협력업체의 고임금 숙련 정규직 일자리가 도시로 젊은 인구를 끌어들이는 핵심 동력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다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조선일보는 낙수효과 중단의 원인을 외국인 노동자 대체와 하청기업의 저임금 구조 고착으로 설명한다. 이는 중요한 지적이지만, 여기에 더해 이 변화가 비가역적이며 도시 생태계의 시대착오성과 결합했다는 점을 함께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고용 구조 자체, 즉 ‘정규직 고숙련 노동자 수요’의 감소가 고용 축소의 근본 원인이다. 원청사가 숙련 노동자를 과거만큼 고용하지 않는 이유는 자동화·모듈화 확대의 영향이 크다. 인건비 절감과 생산 효율화를 위해 자동화 공정이 늘어나고, 남아 있는 단순 공정은 저임금 외국인 단기 노동자가 대체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조선산업의 이익은 늘었지만 지역 소비로 이어지는 임금은 줄어든 이유다. 협력업체들 역시 경쟁 압박 속에서 저임금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청년들이 미래를 설계할 만한 안정적 일자리는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고용의 질이 무너지고 미래 가능성이 사라지자, 청년들이 거제를 떠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 되었다.


상권의 불일치: 과거 소비에 갇힌 도시

고용 구조의 변화는 즉각적으로 상권 붕괴를 가져왔다. 거제의 현재 상업시설은 과거 고임금 노동자들의 대규모 외식·유흥 수요에 맞춰 과잉 공급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주된 노동력은 비용을 최소화하는 외국인 근로자와 소비 여력이 없는 하도급 근로자들이다. 실제로 그들의 지출은 생필품(다이소)과 자가 취사 식자재 중심으로 제한된다.


거제 시내 상가 공실률이 35.1%에 이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의 도시 인프라는 ‘높은 소비력의 과거’에 맞춰진 구조가, ‘낮은 소비력의 현재’와 완전히 어긋난 결과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형 음식점이 아니라 생필품 매장뿐인데, 도시 전체는 과거의 유흥·외식 중심 구조에 묶여 있다. 거제의 상업 인프라는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대안: 조선업 의존 탈피와 도시 혁신

이제 거제시는 조선업 호황이 다시 고임금 일자리로 연결되리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조선업 호황은 자동화·모듈화라는 구조적 변화를 동반하며, 고임금 일자리 사다리는 이미 철거되었다. 곧 도입될 AI·피지컬 AI, 미국이 요구하는 해외 투자는 지역 노동 수요를 더 축소할 것이다.


해법은 조선업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조선업 이외의 산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있다. 창조산업·크리에이터 산업·문화산업은 청년이 도시를 선택하는 핵심 요인이다. 조선업에는 지방세 강화 등 현실적인 재정 기여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상업 시설의 높은 공실률은 공급자를 기준으로 한 도시가 아니라, 청년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기준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신호다. 창조인재 수요자 중심의 상권 혁신이 시급하다.


거제의 역설은 한국 산업도시 전반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의 압축판이다. 청년의 이탈은 도시가 그들에게 합리적인 삶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거제의 미래는 새로운 산업 포트폴리오, 새로운 도시 생태계, 청년이 살고 싶은 환경을 얼마나 빠르게 조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선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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