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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의 상권, 크리에이터의 상권

by 골목길 경제학자

소상공인의 상권, 크리에이터의 상권


1. 상권을 보는 두 개의 시선

도시의 상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와 함께 변해왔다. 20세기 도시 경제학은 상권을 거래의 장소로 보았다. 소비자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저렴하게 필요한 물건을 산다. 상인은 가장 많은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가게를 연다. 이 관점에서 성공적인 상권은 간단하다. 인구가 많고, 교통이 편리하고, 가게가 밀집된 곳이다. 1930년대 크리스탈러(Christaller)의 중심지 이론부터 1960년대 허프(Huff)의 소매 입지 모델까지, 한 세기 가까이 이 논리가 지배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젊은이들은 편의점이 많은 역세권보다 오래된 골목길의 독립 카페를 찾아간다. SNS에서 검색한 빵집을 찾아 한 시간을 이동한다. 접근성과 가격보다 분위기와 진정성을 중시한다. 이들에게 상권은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경험을 소비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문화 공간이다. 같은 상권을 보지만, 이제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디에 가게가 많은가?"와 "어떤 곳이 특별한 장소인가?"


2. 고전 이론의 유산: 입지가 전부였던 시대

전통적 소매 입지 이론의 핵심은 명료했다. 좋은 입지란 최대한 많은 소비자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크리스탈러는 빵집과 가구점이 왜 다른 크기의 배후지를 갖는지 설명했다. 빵은 자주 사니까 가까운 곳에, 가구는 드물게 사니까 멀리서도 찾아온다. 이 논리는 직관적이고 강력했다.


도시계획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상권 위계를 설계했다. 동네 슈퍼마켓, 지역 쇼핑센터, 광역 백화점. 1960년대 미국 교외 쇼핑몰의 전성기는 이 이론의 완벽한 실현이었다. 넓은 주차장, 접근 좋은 고속도로 나들목, 대규모 배후 주거지. 하지만 이 이론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었다. 소비자는 합리적이고, 상품은 동질적이며, 공간은 균질하다는 가정이다. 어떤 빵집에서 사든 빵은 빵이고, 어떤 카페든 커피는 커피다. 하지만 21세기 소비자에게 동네 안 카페와 공항 스타벅스는 같은 "커피"가 아니다. 전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감성이고, 후자는 그냥 카페인이다.


3. 경험 경제의 도래: 상권은 문화 공간이 되었다

1990년대 말 파인과 길모어는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의 도래를 선언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상품과 서비스만 사지 않는다. 기억에 남을 경험을 산다. 같은 커피 한 잔도 플라스틱 컵에 담긴 테이크아웃과 오래된 LP가 흐르는 골목 카페에서의 한 시간은 다른 가치다. 이제 상권은 단순히 물건을 거래하는 장소가 아니라 정체성을 표현하고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MZ세대에게 소비는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어떤 카페를 가고, 어떤 빵집에서 사고, 어떤 서점을 드나드는가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준다. 같은 뉴욕이지만 브루클린을 간다는 것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창의적인 문화"를 경험하러 가는 것이다. 웨스트 빌리지를 찾는 것은 빵을 사러 가는 게 아니라 "힙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즐기러 가는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상권 연구도 진화해야 했다. 더 이상 "얼마나 많은 가게가 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종류의 가게이고, 어떤 문화를 만드는가"를 물어야 한다.


4. 세브축의 작업: 전통 이론의 정밀한 계량화

MIT의 안드레스 세브축(Andres Sevtsuk)은 고전 소매 입지 이론을 21세기 도시 환경에 맞게 조작화(operationalize)한다. 그의 2014년 논문은 케임브리지와 서머빌의 14,218개 건물을 분석하며 "왜 이 건물에는 가게가 들어서고 저 건물에는 들어서지 않는가?"를 묻는다.


세브축의 혁신은 추상적인 이론 개념들을 측정 가능한 변수로 전환한 데 있다. 그는 네 가지 범주의 독립변수를 구축한다. 첫째, 네트워크 접근성(Network Accessibility). 전통 이론이 직선거리로 가정했던 접근성을 실제 거리망을 따라 측정한다. 도보 10분(600m) 반경 내 거주자 수, 일자리 수, 건물 밀도를 중력 지수(Gravity Index)로 계산하고, 지하철역·버스정류장까지의 네트워크 거리를 측정한다.


둘째, 매개 중심성(Betweenness Centrality). 이는 세브축의 독창적 기여다. 어떤 건물이 다른 목적지들 간 최단 경로 상에 얼마나 자주 위치하는가—즉, "지나가는 통행"의 가치를 네트워크 이론으로 계량화한다.


셋째, 공간 상호작용(Spatial Interaction). 100m 반경 내 다른 건물의 소매업 유무를 공간 래그(spatial lag, ρ)로 측정하여 군집효과를 포착한다.


넷째, 부지 및 가로 특성(Site and Street Characteristics). 필지가 몇 개 도로에 면하는가(parcel type), 건물 면적, 보도 폭, 도로 폭을 측정한다.


이 네 범주는 고전 이론의 핵심 개념들—접근성, 집적의 경제, 도시 형태—을 건물 단위에서 측정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5. 세브축의 발견: 업종별로 다른 입지 논리

세브축의 분석은 모든 가게가 같은 입지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소매업을 비교쇼핑재(search goods)와 편의재(convenience goods)로 구분한다. 레스토랑, 의류점, 전자제품점과 같은 비교쇼핑재 매장은 경쟁자 옆에 군집한다(ρ=0.19~0.29). 손님들이 여러 옵션을 비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반면 슈퍼마켓은 서로를 피해 분산된다. 표준화된 상품을 파니까 비교의 의미가 없고, 각자의 배후 지역을 독점하려 한다.


매개 중심성은 모든 업종에서 양(+)의 효과를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게가 들어선다. 코너 건물은 일반 건물보다 소매업 보유 확률이 8.5% 높다. 이러한 발견들은 제인 제이콥스가 직관적으로 주장했던 것—짧은 블록, 넓은 보도, 다양한 건물—을 데이터로 확인한다. 세브축의 작업은 전통 소매 이론을 현대 도시의 복잡한 네트워크 구조 속에서 정밀하게 검증한 것이다. 그는 "좋은 입지"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으로 측정하고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다.


6. 세브축이 포착하지 못하는 것: 프랜차이즈와 독립 가게

하지만 세브축의 프레임워크에는 결정적 간극이 있다. 그의 분석에서 스타벅스나 독립 로스터리 카페나 똑같은 "커피 전문점"이다. 맥도널드나 로컬 맛집이나 똑같은 "음식점"이다. 그가 사용하는 NAICS 산업 분류는 무엇을 파는가만 구분하고 누가, 어떻게, 왜 파는가는 구분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10개가 늘어선 거리와 독립 가게 10개가 모인 거리는 그의 모델에서 동일한 "소매 밀도"로 측정된다. 하지만 전자는 뉴육이든 보스톤이든 똑같은 풍경이고, 후자는 그 동네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든다.


캠브리지가 특별한 이유는 가게가 많아서가 아니라 콜로니얼 시대의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독특한 카페들, 청년 창작자들이 운영하는 소품샵들이 모여서다. 세브축의 변수 체계는 경험 경제 시대의 핵심—콘텐츠의 고유성, 창작자의 정체성, 문화적 진정성—을 포착할 수 없다. 그의 모델은 "가게 수"를 예측하지만 "동네 문화"는 설명하지 못한다.


7. 경험 경제의 조작화: 독립 사업체 집적도로 문화 측정하기

나의 연구(모종린·최은지, 2024)는 경험 경제 개념을 서울 상권에서 조작화하려는 시도다. 세브축이 전통 입지 이론을 계량화했다면, 우리는 경험 경제와 창조도시 논의를 측정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다. 핵심은 프랜차이즈와 독립 사업체를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독립 카페, 독립 베이커리, 독립 서점 세 업종에 주목했다. 이들은 도시문화 연구에서 "일상적 창의 활동"을 대표하는 업종으로 널리 인정받는다. 독립 서점은 지적 담론의 공간, 독립 카페는 창작 활동의 거점, 독립 베이커리는 수제 문화의 상징이다. 이 세 업종이 함께 있을 때 완결된 문화 경험 공간이 형성된다는 가설이다.


우리는 입지계수(LQ)를 사용하여 이 세 업종의 상대적 집적도가 모두 1.25 이상인 곳만을 "로컬 상권"으로 정의했다. 이는 "경험 기반 문화 지구"라는 추상적 개념을 객관적으로 식별 가능한 기준으로 만든 것이다. 서울 423개 행정동 중 38개(9%)가 이 기준을 충족했다. 연남동, 성수동, 익선동—우리가 직관적으로 "문화적 동네"라고 느끼는 곳들이다.


8. 역사·청년·건축: 경험 경제 상권의 조건들

경험 경제 상권의 형성 조건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우리는 세 가지 차원을 조작화했다. 첫째, 역사적 층위(Historical Layers). 서울을 원도심(조선시대 4대문 안), 구도심(근대 철도·전차 중심), 신도심(1960년대 이후)으로 구분하는 더미변수를 만들었다. 이는 "복제 불가능한 진정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측정 가능하게 한다. 결과는 명확했다. 원도심 21.9%, 구도심 16.9%, 신도심 3.4%가 로컬 상권이었다.


둘째, 커뮤니티 특성(Community Characteristics). 청년인구 비율(20-39세), 주거인구 규모, 1인 가구 비율을 변수화했다. 이는 "취향 공동체"라는 개념을 인구학적으로 측정한다. 청년 비율은 양(+), 주거인구는 음(-)의 효과를 보였다. 로컬 상권은 가족이 아니라 청년 개인들이 모이는 곳이다.


셋째, 건축 유형학(Architectural Typology). 아파트 비율, 대학상권 여부를 변수로 만들었다. 이는 "인간적 스케일의 도시 조직"을 측정한다. 아파트 비율은 강한 음(-)의 효과를 보였다. 로컬 상권은 저층 주거지의 다양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있는 곳에서 형성된다.


9. 지나가는 통행 vs. 목적지 방문: 두 상권의 다른 메커니즘

세브축과 내 연구의 대조는 유동인구에서 나타난다. 세브축에게 매개 중심성—사람들이 지나가는 경로 상에 위치함—은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다. 우연한 만남이 거래로 이어진다. 반면 나의 연구에서 유동인구와 초역세권(지하철역 250m 이내)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이는 측정 오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소비 메커니즘을 반영한다. 일반 소매업—편의점, 체인점, 슈퍼마켓—은 발견으로 작동한다. 지나가다 보이면 들어간다. 즉흥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


로컬 상권의 독립 가게들은 탐색으로 작동한다. SNS에서 검색하고, 리뷰를 읽고, 지도에 저장해 두었다가 일부러 찾아간다. 계획적이고 목적 지향적이다. 멀어도, 찾기 어려워도 괜찮다. 그 경험 자체가 가치니까. 세브축이 측정한 것은 소상공인의 거래 메커니즘이고, 우리가 측정하려 한 것은 크리에이터의 문화 생산 메커니즘이다. 둘은 공간적으로 다른 논리를 따른다.


10. 두 개의 조작화, 두 개의 세계

세브축과 나는 같은 도시 현상을 다르게 조작화했다. 세브축은 전통 소매 입지 이론의 핵심 개념들—접근성, 집적의 경제, 통행량—을 네트워크 분석과 공간 통계로 정밀하게 측정 가능하게 만들었다. 나는 경험 경제와 창조도시 논의의 핵심 개념들—진정성, 창의성, 문화 정체성—을 독립 사업체 집적도, 역사적 층위, 청년 커뮤니티로 측정 가능하게 만들려 했다. 세브축의 종속변수는 "소매업 유무"다. 나의 종속변수는 "독립 사업체 집적 여부"다. 세브축은 "어디에 가게가 많은가"를 설명하고, 나는 "어디에 문화 지구가 형성되는가"를 설명하려 한다.


어느 것이 옳은가? 둘 다 필요하다. 세브축이 제시한 물리적 조건—접근성, 보행환경, 네트워크 구조—은 필요조건이다. 이것 없이는 시작할 수 없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경험 경제 상권이 되려면 문화적 조건—역사적 진정성, 독립 창작자, 고유한 콘텐츠—이 필요하다. 21세기 상권 연구는 이 두 조작화를 통합해야 한다. "가게가 어디에 입지하는가"와 "문화가 어디에서 생산되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세브축은 상권의 물리학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상권의 문화학을 만들어가야 한다.



참고문헌

Sevtsuk, A. (2014). Location and Agglomeration: The Distribution of Retail and Food Businesses in Dense Urban Environments. Journal of Planning Education and Research, 34(4), 374-393.

모종린·최은지 (2024). 서울시 로컬 상권의 입지 특성 분석. (게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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