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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강한 도시가 도시가 강하다

by 골목길 경제학자

동네가 강한 도시가 도시가 강하다


정치인과 언론은 도시 경쟁력을 강조한다. 글로벌 도시, 스마트 도시, 혁신 도시, AI 도시 같은 표현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도시 경쟁력'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불분명하다.


가장 큰 문제가 범위다. 예컨대 서울이 어디인가? 누구에게 서울은 4대 문 안이고, 누구에게는 행정구역상의 서울이다. 최근에는 대서울, 대서울권이라는 표현으로 수도권을, 더 나아가 충청권까지 서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서울의 경쟁력'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동네와 생활권이다. 도시 경쟁력이 아니라 우리 동네 경쟁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강연에서 "동네가 강한 도시가 도시가 강하다"는 표현을 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세계 도시들의 문헌을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네를 강조한다.


"하루에 한 동네." 중앙일보가 파리 한 달 살기를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달팽이집처럼 나선형으로 구획된 파리의 20개 구를 하루에 하나씩 천천히 둘러보는 '달팽이 여행법'. 각 아홍디스멍(구)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와 문화가 있다. 파리의 힘은 에펠탑이나 루브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개의 서로 다른 동네들이 만들어내는 다양성, 그것이 파리를 파리답게 만든다.


"각자의 도심을 가진 12개 자치구(each of 12 boroughs with their own version of a city centre)." 모노클 여행 가이드가 베를린을 묘사한 표현이다. 이 도시에는 하나의 중심이 없다. 미테, 크로이츠베르크, 노이쾰른, 프렌츨라우어베르크... 각 자치구가 자기만의 중심지를 가지고 있다. 베를린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키츠(Kiez, 동네)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이 다중심 구조가 베를린을 창작자들의 도시로 만들었다.


"포테오는 사회적 의례(Poteo is a social ritual)." BasqueBizi가 빌바오의 본질을 요약한 문장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한 도시지만, 빌바오를 정의하는 것은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 아니다. 동네마다 자리 잡은 핀초스 바들을 돌아다니는 포테오. 이것은 단순한 바 호핑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 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동네 커뮤니티를 만드는 의례다. 구시가 카스코 비에호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 동네 문화가 빌바오의 진짜 경쟁력이다.


"작고 창의적인 메이커들의 도시(City of Small and Creative Makers)." 포틀랜드 시장을 지낸 Sam Adams가 자신의 도시를 부른 이름이다. 실제로 이 미국 오리건주 도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거대 기업의 간판보다 독립 브랜드의 작은 가게들이 눈에 띈다. 각 동네의 메이커스페이스에서는 소규모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제품을 만든다. 동네 단위의 창작 생태계. 이것이 포틀랜드를 메이커 시티로 만들었다.


"모든 블록이 하나의 단편소설(Every block is a short story)." 퓰리처상 수상 작가 William Saroyan이 샌프란시스코를 묘사한 표현이다. 그의 눈에 이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각 블록마다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 수많은 단편들의 모음집이었다. 미션 디스트릭트를 걷다가 카스트로로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하이트애쉬베리의 히피 문화, 노스비치의 비트 세대. 블록 단위로 전혀 다른 도시가 존재하는 것, 그것이 샌프란시스코의 본질이다.


"마을들의 집합(A Collection of Villages)." 1920년대 관동대지진 이후 도쿄 재건 계획에 참여했던 역사학자 Charles Beard가 이 거대 도시를 표현한 말이다. Edward Seidensticker는 자신의 저서 『Tokyo: from Edo to Showa』에서 이 표현을 인용하며, 도쿄가 수많은 마을들이 모여 형성된 도시임을 강조한다. 시부야, 신주쿠, 시모키타자와, 나카메구로... 각각의 동네가 독립적인 생활권을 형성하면서도 전체로서 도쿄를 이룬다.


"서울 안의 100개 도시(A Hundred Cities Within Seoul)." 서울도 다르지 않다. 뉴욕타임스가 2015년 서울을 소개한 기사의 제목이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서울의 골목길을 걸으며, 기자는 이 거대 도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많은 작은 도시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발견했다. 단일한 서울은 없다. 홍대, 성수, 이태원, 을지로... 각각의 동네가 자기만의 정체성과 문화를 가진 하나의 도시다.


이 일곱 개 도시가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도시의 힘은 화려한 랜드마크나 추상적인 도시 브랜드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동네들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동네가 강해야 도시가 강하다. 이것이 세계의 위대한 도시들이 공유하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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