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버블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실리콘밸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12월 2일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밸리의 "기술-자유지상주의(techno-libertarianism)"를 25년 전 비판한 폴리나 보르숙(Paulina Borsook)을 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낯선 이름이었지만, 그녀가 2000년 출간한 『사이버이기주의(Cyberselfish)』의 내용은 오늘날 실리콘밸리 비판론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보르숙이 기록한 1990년대 후반 실리콘밸리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부자면 똑똑한 것"이라는 믿음, 인간을 "프로그래밍 가능한 존재로 봐야 한다"는 사고, 정부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 공감 능력이 "결함"으로 여겨지는 문화. 그녀는 이것을 "기술-자유지상주의"라고 명명했다.
특히 정부에 대한 증오가 이상했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실리콘밸리 주민들만큼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고통은 적게 받은 사람들이 없는데, 나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화가 나 있을까?" 당시 실리콘밸리는 국방부 계약과 연구비로 성장했다. 인터넷 자체가 정부 자금으로 만들어졌다. 캘리포니아의 관개 시스템, 고속도로, 학교, 대학 모두 공공 투자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순수하게 시장의 힘으로 성공했다고 믿었다.
보르숙의 책은 당시 기술 낙관주의 흐름 속에서 사실상 외면당했다. 그녀의 작가 경력은 "끝났고", 이후 그녀는 비정규적 일자리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그런데 2025년, 그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를 맡았고, 피터 틸은 공개적으로 민주주의에 회의적 입장을 밝혔으며,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섰다. 25년 전 보르숙이 경고했던 것이 '공식화'된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읽으면서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첫째, 보르숙보다 5년 더 일찍(1995년) 실리콘밸리의 권위주의적 전환을 경고한 영국 학자들—리처드 바브룩(Richard Barbrook)과 앤디 카메론(Andy Cameron)—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는 히피 문화와 자유지상주의의 불안정한 결합을 분석하며 실리콘밸리가 결국 권위주의로 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둘째는 타이밍이다. 왜 미국 주류 언론은 지금에서야 30년 전의 경고를 재발견하는 것일까?
실리콘밸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미국 언론이 실리콘밸리를 바라보는 프레임이다. 2000년 보르숙이 기록한 내용—정부에 대한 경멸, 부와 지혜를 동일시하는 믿음, 인간을 프로그래밍 대상으로 보는 시각, 공감 능력의 결여—은 이미 권위주의적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언론은 이를 "자유지상주의"(자유를 사랑한다!), "능력주의"(실력으로 성공했다!), "혁신적"(빠르게 움직이고 깨뜨린다!), "합리주의"(논리적일 뿐이다!)로 해석했다.
미국 언론, 특히 진보 언론이 실리콘밸리에 호의적이었던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대자본을 견제하는 데서 비롯된 기술 노동자와 언론인의 계급적 동질성, “기술계는 사회 이슈에서 진보적이다”라는 정파적 가정, 미국 문화에 깊이 박힌 혁신 숭배, 기술인과 언론인이 공유해 온 정부 회의론, 그리고 성공을 능력과 지혜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능력주의적 신념 등이 그것이다.
트럼프의 등장은 이 프레임의 허약함을 드러냈다. 진보 언론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손잡은 실리콘밸리 인사들에게 더 이상 선의를 부여할 근거가 사라졌다. 권위주의적 정치 행위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진보적’이라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스티븐 레비는 최근 와이어드 기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어떻게 이걸 놓쳤을까?" 하지만 그는 놓친 것이 아니었다. 보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정보는 거기 있었다. 보르숙이 기록했고, 바브룩이 분석했다. 다만 그것을 권위주의로 인식하는 것이 자신의 계급적 위치, 정파적 가정, 그리고 미국 예외주의와 충돌했을 뿐이다.
뉴욕타임스가 2025년 보르숙을 재조명하면서도 여전히 바브룩을 인용하지 않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내부 관찰자의 기록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구조적 정치경제학 비판은 여전히 불편한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틴 하이데거, 자크 엘룰, 루이스 멈포드 같은 기술철학자들이 일찍이 경고한 기술사회의 권위주의적 위험도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
실리콘밸리의 권위주의적 전환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바브룩이 구조적으로 예측했고, 보르숙이 내부자 관점으로 기록했다. 2025년에 달라진 것은 미국 언론이 더 이상 이를 외면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다. 자본 축적의 논리가 국가 권력 포획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보여준 패턴이다. 하지만 25년 동안 경고를 외면하고 이제 와서 "놓쳤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언론은 미국 주류 언론이 30년 늦게 깨달은 교훈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실리콘밸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기술철학 전통을 균형 있게 소개하기를 바란다. 기술철학의 입문서로는 손화철 교수의 『미래와 만날 준비』(2021)를 추천한다. 이 책은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Barbrook, R., & Cameron, A. (1995). The Californian Ideology. Science as Culture, 6(1), 44-72.
Borsook, P. (2000). Cyberselfish: A Critical Romp Through the Terribly Libertarian Culture of High Tech. New York: PublicAffairs.
Mumford, L. (1964). Authoritarian and Democratic Technics. Technology and Culture, 5(1), 1-8.
Mumford, L. (1967). The Myth of the Machine: Technics and Human Development.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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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itfeld, D. (2025, December 2). "The Writer Who Dared Criticize Silicon Valley."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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