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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Dec 04. 2019

비행기에서 느낀 동서양의 온도차

독일 베를린에서.

더운 여름이 본격적으로 찾아오기 전, 그러니까 6월 즈음이었다. 나는 남편과 독일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다. 그리고 베를린에 도착한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무려 6시간 동안 비행기에 갇혀버렸다.

사건의 정황은 이러했다.



1. 서울-헬싱키-베를린 경로의 비행기를 이용

2. 헬싱키에서 환승하여 베를린으로 가던 도중, 테겔공항(A) 착륙 예정이던 비행기가 기상 문제로 인해 쇠네펠트(B) 공항으로 경로를 바꿔 착륙.

※ 편의상 테겔: A, 쇠네펠트: B로 칭함.

A공항-B공항은 약 30km 거리(대중교통으로 약 1시간 소요)

3. 착륙은 했으나 내리지를 못함. 뭔가 잘 안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애매한 내용의 안내방송만 1시간에 한 번씩 나옴. 하염없이 기다림. 아마 B가 워낙 작은 공항이라 계단 차 등의 시설이 부했던 것으로 추정됨.(이런 안내도 안 해줬음.)

4. 2시간쯤 지났을 때 승무원이 안내를 해줌.

"이제 승객들은 내릴 수 있지만 위탁 수하물은 여기서 줄 수 없다. A로 돌아간 뒤에 을 내릴 예정이, 놓고 가면 나중에 연락해서 부쳐주겠다. 만약 짐을 오늘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20분 뒤에 A로 출발할 예정이니 남아있어라."
우린 를린에 사는 고모에게 드릴 음식을 한가득 가져온 터라, 음식이 상할까 봐 후자를 선택.

5. 하지만 20분 뒤에 출발은커녕 1시간 뒤에야 승객들이 B공항에 겨우 내렸고, 남은 사람들은 그 이후로도 3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림.

6. 총 5시간 반을 기다린 후에야 A공항으로 출발하여, 예정 도착 시간으로부터 약 6시간이 지나서야 착.



 나와 남편은 불안함에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고모와 친척 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A공항에 마중을 나왔다가, 소식을 듣고 다시 B공항까지 이동하여 우리를 기다렸다. 그러다 전혀 기약이 없어서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마냥 행복해야 할 여행의 시작이, 아주 곤란해져 버렸다.

우리는 저녁밥도 먹지 못한 채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기분으로 좁은 좌석에 앉아있었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기내의 갑갑한 공기를 느끼며 빗물이 떨어지는 창문을 바라보는 수밖에. 바로 옆에 정차해있는 비행기 역시 승객들을 그대로 태운 채 온몸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비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은 이해한다만, 무엇보다 항공사의 대응이 참 답답했다. 승무원들은 별다른 안내도 해주지 않은 채 입구 쪽에 가만히 서있었다. '이 비행기에서 오늘 안에 내릴 수는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 상황을 겪으며, 나는 자연히 기내에 있는 승객들을 주시하게 되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동양인은 거의 없었다. 몇몇 중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유일한 한국인으로 보이는 우리까지. 다 합쳐도 10명이 안돼 보였다.

 처음에 착륙 공항을 A에서 B로 바꾼다는 방송이 나왔을 때였다. 우왕좌왕할 법도 한데, 다들 너무나도 태연해서 내가 방송을 잘못들은 줄로만 알았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인천공항 착륙 예정이던 비행기가 김포 공항에 착륙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방송을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것도 비행기가 고도를 조금씩 낮추며 착륙을 준비할 즈음에. 방향을 잡기 위해 한쪽 날개를 낮추며 갸우뚱, 회전하는 타이밍 즈음에. 분명 사람들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라도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별 반응이 없던지.

착륙 후, 앞서 이야기했던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무심코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은 하나, 둘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저녁시간이었기에 몇몇 사람들은 승무원에게 음식을 주문했다. 여기저기서 후루룩 짭짭 소리가 들렸다. 보드카처럼 센 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조금 지나자 술을 마셔서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이 보였다. 술에 취한 몇몇 사람들은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아니, 분명히 즐기고 있었다. 술기운을 풍기며 신나게 수다를 떠는 그들 덕에 기내의 공기가 후끈해졌다.

우리 역시 나름대로 그 시간을 즐기려 노력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억지로 쥐어짰다. 일부러 장난도 쳐보고, 인쇄해온 독일어도 공부해보고(특히 '배고프다'라는 뜻의 독일어를 매우 열심히 외웠다.), 또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뿐, 금방 정적은 찾아왔다. 다운받아온 영화를 켜보았지만 그마저도 '곧 출발하겠지...'라는 희망 때문인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남편의 뱃가죽은 쏘오옥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마음의 여유도 쪼그라들어갔다. 자꾸만 화가 났다.

"오빠, 어쩜 컴플레인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누군가 나 대신 이 상황에 대해 불평해주길 바랐다. 내가 뱉은 말이지만, 혀 위에 살살 굴리며 곱씹어보니 참으로 간사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상황과 분위기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저 이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존재했다. 그 아무도 승무원을 재촉하거나, 언제쯤 해결되냐고 묻지 않았다. 그쯤 되자, '분명 나중에 보상이 되기 때문에 아무도 컴플레인을 걸지 않는 걸 꺼야.'라는 마음마저 들었다. 2시간 즈음부터는 몇몇 사람이 승무원에게 다가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모두 동양인이었다.

세 시간의 대기 끝에, 드디어 "B공항에서 내리실 분은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라는 승무원의 안내가 나왔을 때였다. 사람들은 내릴 준비를 하면서 입으로 호루라기를 불고,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반쯤 춤을 추며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오만상을 찌푸려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그렇게 총 여섯 시간이 지난 뒤, 비행기는 B공항에서 이륙하여 A공항에 착륙했다. 저녁 6시 도착 예정이었던 목적지에 밤 12시가 넘어서 도착한 것이다. 우린 터덜터덜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고 고모 집으로 향했다. 고모와 언니는 우리를 기다리느라 새벽 1시까지도 저녁을 드시지 못한 상태였다. 속이 상했다. 고모가 차려주신 밥을 먹은 뒤, 난 늦은 시간에도 잠들지 못하고 항공사에 보상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항공사의 답변은 친절하면서도 아주 단호했다.
"송구스럽게도 기상의 영향으로 항공편이 지연되는 경우는 보상이 진행되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생각해보니 보상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기상 악화를 뚫고 원래 일정대로 강행했다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답변을 잘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보상도 없는데 승객들이 그렇게나 조용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돼.



 약 열흘 간의 독일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길, 헬싱키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한국인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제 막 착륙을 하는 시점에 어떤 아주머니께서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걸 우리가 작성해야 되는 거면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이제 벌써 다 와버렸는데! 우린 당연히 가이드님이 다 해주는 건 줄 알았지!"
"어머니! 제가 개인 정보를 어떻게 다 알겠어요. 그건 어머니가 하셔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거 내려서 작성하셔도 괜찮아요!"


보아하니, 세관 신고서까지 여행 가이드가 모두 작성해주는 줄 아셨던 모양이다. 그 아주머니에 맞장구를 치는 다른 어르신들의 목소리까지 덧붙여져서 기내는 한껏 시끄러워졌다. 이런 상황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는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그러다 베를린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후끈해졌다. 왜 아무도 컴플레인을 안 하나,라고 기다리던 나의 모습이. 6시간 동안 침착한 사람들의 모습이 수상해서는 보상을 요구하던 나의 모습이.

이렇게 나는 독일을 오고 가는 비행기에서 동서양의 온도차를 느꼈다. 물론 동양, 서양이라는 큼직한 범주를 일반화시키기는 어렵다. 동양은 나쁘고 서양은 좋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양 사람들은 워낙 느려 터진 일처리에 익숙해져서 자포자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또, 동양 사람들은 부지런한 성향 덕에 시간을 아껴 쓰고자 자꾸 재촉하는 것일지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확실히 서양의 한 가지는 부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저 기다릴 줄도 알았다는 것. '어차피,'를 받아들일 줄 알았다는 것.

 
우리는 빠르고 편한 상황들에 너무 길들여져 버려서, 조금만 불편해져도 금방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어차피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어차피 이미 지나가버린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시간을 재촉한다.

'빨리빨리'.

항상 한시가 아깝고 한시가 급한 대한민국의 국민 중 하나로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큼은 기다릴 줄 아는, 아주 최소한의 여유. 그 정도의 틈은 있었으면 좋겠노라고.




커버 사진/ 쇠네펠트 공항에서. 6시간동안 갇히다.

다음 메인에 올라간 덕에 조회수 3만을 돌파했네요...! 부족한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제 글이 논란의 소지가 조금 있네요! 쓰면서도 우려했던 부분이라, 본문에도 '일반화시키기는 어렵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기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건 맞지만.... 멀쩡히 공항에 도착하고도,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못 내리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도 불평 없이 여유롭게 기다리는 그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하고, 조금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쓴 글이구요. 부연설명을 해야 하는 걸 보면 정말 부족한 글이 맞는 것 같습니다ㅠㅠ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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