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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Jan 20. 2020

다시마의 재발견

나도 재발견할 수 있을까?

※커버 사진은 다시마 찜닭과 무관합니다. 마땅한 찜닭 사진이 없어서 다른 밥상 사진으로 올립니다 :-)



자, 여기 끝내주게 맛있는 레시피가 하나 있다.
이름하야 ‘다시마 찜닭’.
<수미네 반찬>이라는 TV 프로에서 소개된 김수미 선생님의 비법 레시피이다.


1. 올리브유를 촤악 뿌린 뒤 팬을 달궈준다.
2. 닭을 올려서 닭껍질에 누룽지가 생길 때까지 뒤집어가면서 구워준다.
3. 어느 정도 구워졌다 싶으면 물과 양념을 붓는다.
4. 큼직한 다시마 몇 장을 돌돌 말아서 넣고, 감자나 양파 등도 넣는다.
5. 다 되면 닭을 다시마에 싸 먹는다.


 나에게 있어 다시마란-요리 초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국물을 낼 때밖에 사용해본 적 없는 식재료였다. 그마저도 육수를 끓일 때는 멸치, 무, 대파, 새우, 다시마 등등을 동시에 넣은 뒤 10분이 지나면 다시마를 먼저 빼라고 하지 않는가. 미역은 미역국으로 워낙 유명해서 주요 식재료로 쓰이지만 다시마를 주 재료로 한 요리는 듣도 보도 못했다. , 굳이 따지자면 간식으로 먹는 다시마튀각 정도....?

 이전에는 시중에 파는 달콤 짭짤한 찜닭의 맛을 흉내 내서 요리를 했었더랬다. 그러다 처음 다시마 찜닭을 해 먹었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사실 다시마를 통째로 돌돌 말아서 넣는다는 말부터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시마를 넣고 오랫동끓이면 분명 씁쓸해진다고 들었는데... 다시마를 넣고 계속 같이 끓인다니. 거기다 다시마에 닭을 싸 먹는다고? 여러모로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다시마와 닭의 조합은 실로 엄청났다. 매끈 쫄깃한 다시마가 닭고기를 만나 입에서 한데 어우러지며 이뤄내는 하모니는 끝도 없이 감탄을 자아냈다. 거기다가 다시마와 닭에서 쭉쭉 빠져나온 국물에는 감칠맛이, 자극적인 찜닭의 맛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감칠맛이 났다. 그 은은한 국물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흰쌀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떠서 국물에 비벼먹으면 춤이 절로 나왔다.

이 요리는 적어도 나에게는 ‘다시마의 재발견’과도 같았다. 평소 본인의 엑기스를 육수에 내어준 채 장렬히 전사하던 다시마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번듯하게 제 몫을 하는 다시마가 바로 이 요리에 있었다. 다시마가 통으로 먹어도 이렇게나 맛있는 재료였구나.... 그다음부터 나는 다시마 찜닭을 할 때마다 큼찍한 다시마를 욕심껏 넣는다. 다시마가 많을수록 더 맛있기 때문이다.



 나는 화학 분야를 전공했다. 대학원에서 학위까지 따고 나니, 나에게는 화학쟁이라는 이름표가 붙어버렸다. 막상 졸업 후 일을 해보니 나에게는 맞지가 않았다. 일을 할 때마다, 정말이지 엑기스만 빨리고 장렬히 전사한 다시마처럼 지쳐버렸다. 화학쟁이로서 그럭저럭 인정을 받아오기도 했지만 나 자신은 절대 만족하지 못했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취미를 가져왔지만, 글쓰기는 내게 취미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공대 출신의 화학쟁이로서는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내가 글쓰기에 있어 환상의 감칠맛을 낼 수 있는 다시마일지도. 혹시 모를 나의 재발견을 위하여 오늘도 나의 글쓰기 생활에 불을 붙여본다.




커버 사진/ 찜닭과는 무관하지만, 우리집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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