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에게는 많은 정치적 변화들이 일어났다.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게 되었고 실질적인 3권 분립을 이루어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며 한국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90년대를 지나며 언론의 독립성도 강화되었고 사법부의 독립을 통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한국은 이제 민주주의 국가가 된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제도적 차원에서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렇게 쉽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완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항상 추구해야 할 하나의 이상이며 환상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완벽히 구성한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다만 민주주의를 향한 끝없는 도전과 치열한 사투가 있었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잡을 수 없는 꿈과 환상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걸었던 이유는 그 꿈을 포기하는 순간,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악화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반대로 흐르는 것을 막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사람들은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쫓았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한낱 꿈이지만, 그 꿈을 포기하거나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후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공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르고 그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교체하였으며 정치적 권력이 그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루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몇몇 제도적 차원에서만 작동되는 민주주의를 보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서민이나 약자들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는 형식적인 ‘일차원적 민주주의’만 작동하는 곳에서는 권력의 빈 공간이 발생하고 그 빈 공간은 결국 자본의 힘에 의해서 채워지게 된다.
정치권력의 부재로 발생한 권력의 빈 공간을 차지한 자본권력은 계급을 고착화시키며 일차원적 민주주의를 조장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뛰어난 능력이나 재능도 부의 대물림을 역전할 수 없게 만들고 아무리 열심히 노동한다고 해도 그 노동의 대가는 노동을 한 사람이 아니라 그 노동을 지켜본 자산가에게 돌아가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부의 대물림 없이는 학벌도 사회의 다른 권력도 쟁취할 수 없게 만들어 사람들을 권력의 주변부로 계속 밀어낸다.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착각한 곳은 이제 가치가 작동하지 않는 허무의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격차는 더울 벌어지며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나의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는 없을 것만 같다. 현재 한국은 희망이나 기대가 작동하지 않는 허무의 공간이다.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의미와 가치가 작동하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그래도 정치밖에 없다. 비록 지금의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정치의 모습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자본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은 정치권력이다. 정치를 통해서 일차원적 민주주의를 극복하고 동시에 허무의 정치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정치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새로운 자유주의(New Liberalism)’는 이러한 정치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새로운 자유주의’란 19세기 말 극심한 빈곤과 빈부격차 등 영국에 만연한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태동한 정치철학으로서 극단적 개인주의를 반대하고 국가의 개입 및 적극적 자유를 긍정하며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통일을 제시한 사회개혁 이론이다. ‘국가’와 ‘개인’을 대립적으로 보는 이분법을 극복하며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나타난 개혁적 정치철학으로 정치에 대한 생각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사유체계이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 세상이 변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거짓된 환상이며 더 큰 허무를 부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이상’은 항상 ‘현실’에게 조롱의 대상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투었을 때, 상처를 받는 것은 늘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상’에 대한 추구를 멈춘다면 우리는 결국 현실에 잠식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 어리석어야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어리석음을 체득해야 한다. 우리가 ‘새로운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더 어리석게 민주주의를 추구할 때, 민주주의도 이제 여기에 있을 수 있다. 1%의 민주주의가 아닌 우리 옆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