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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언덕을 함께 넘는 동안

기쁨은 슬픔을 거슬러 고개를 내민다 4

by 양주안

아르베카를 떠난 지 일주일 만에 X는 내게 희망과 절망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조카가 태어났어. 이름은 큄이야. 한국에 킴이라는 이름이 많다지? 얘의 삼촌이 되어줘!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곧장 영상통화를 걸었다. 먼 곳에서 태어난 조카의 얼굴이 궁금했다. 기쁨을 만끽하고 있구나. 아무튼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인터넷으로 아기 옷을 검색했다. 귀여운 양말세트가 눈에 띄었다.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는 답장을 기다렸다. 선물을 살 거라고, 우편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충분히 축하해 준 뒤에 은근슬쩍 물어볼 요량이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는 건 정말이지 기쁜 일이다. 그것도 작지만 좋은 소식일 테니까.


몇 시간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

큄이 많이 아파. 상황이 좋지 않아.

안 좋은 소식에 답신하는 일은 경험이 쌓여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큄을 위해 기도할게!

다시 몇 시간이 흘렀다.

큄이 중환자실에 들어갔어. 어쩌지?


나는 한국에 있었고, 큄이 있는 병원은 마드리드였다. 그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내게 어쩌면 좋겠냐고 물었다. 곁에 있는 이의 무기력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고개만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당황, 기어코 끄집어낸 말은 기도할게 밖에 없었다.

기도는 무기력하다. 하늘에 대고 이루어질지 아닐지 모르는 일을 되뇐다. 이미 손아귀 밖에 놓인 상황 한가운데서 헛손질을 해대는 기분이다. 소원이 있을 때만 신을 찾았으므로 대답이 없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염치를 챙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 아니다.

반나절쯤 지났다. M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이미 휴가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제출하지 않은 휴가증을 품은 채 답신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M의 메시지 끝에는 짧지만 깊은 무력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루가 지났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답신이 와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물을 벌컥 들이마셨다. 감당할 수 있는 내용이기를 바랐다.


살았어! 큄이 살았다고!


짧은 메시지와 함께 조카 사진이 와 있었다. 평온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작은 아기가 나를 밤새 괴롭힌 범인이구나! 태어나자마자 커다란 언덕을 넘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귀엽다. 쭈글쭈글하고 통통한 볼을 꼬집어 주고 싶었다. 이집트와 한국에 있는 삼촌들이 어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설명해 줘도 못 알아들을 게 뻔했다. X에게도 구태여 지난밤의 무력함을 말하지 않았다.

곧장 M과 나는 서로 얼마나 무력한 시간을 보냈는지에 관해 성토대회를 열었다. 서로의 긴장이 다 풀릴 때까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냈다.


하다못해 해를 보고 빌었다니까?

제대로 빌었네. 이집트에 태양신 있잖아. 나는 달을 보고 빌었어.

한국에는 달의 신이 있어?

그냥 그때 눈에 보인 제일 큰 빛을 향해 빌었을 뿐이야.


우리는 허공에 대고 수없이 손짓했다. 다른 곳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셈이다. 낮과 밤이 달랐고, 해와 달을 보았으나, 분명 함께였다. 멀리 떨어져서도 삶의 크고 작은 언덕을 함께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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