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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호텔, 그랜드 하얏트 서울

GXQW+H8 서울특별시

by 노랑자

서울과 5성급 호텔

한 도시의 5성급 호텔의 유무가 중요한 이유는 글로벌 교류를 위한 기반시설이 마련되었는지에 대한 척도이기 때문이. 세계화 이전, 낯선 3국을 방문할 때 서구 비즈니스맨들이 오늘날과 같은 숙박 인프라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역 숙박 시설이 있었다 한들, 취침, 음식, 위생 관념이 아예 다르다면 과연 그런 장소에서 푹 쉴 수있었을까? 낯선 오지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본인들에게 익숙한 서구식 침대, 화장실, 입맛에 맞는 컨티넨탈 브렉퍼스트, 운동을 위한 헬스 시설과 스파, 비즈니스 수행을 위한 회의시설 등이 필요했을 것이다. 호텔의 별은 숙박시설이 얼마나 글로벌 표준을 따르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체계이다.

특히 별 다섯개를 달고 있는 호텔은 국가 정상, 기업 CEO 등 국빈을 접대하기 위한 필요조건을 갖췄음을 알리는 지표이다. 이제 서울에는 무려 30개가 넘는 5성급 호텔이 있다고 한다. 높아진 GDP와 비례하여 국내 소비 수준도 높아진 만큼, 5성급 호텔은 꽤 흔하게 접하는 소비재가 되어, 해외 여행객과 국내 이용객 모두에게 폭넓은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하던 1960년대 당시의 서울은 스트롱맨의 한마디에 빈 땅이 생기고, 건물이 뚝딱하고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계 열강에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선보이기 위해 건립된 글로벌 호텔들은 시청, 을지로, 장충동, 이태원 등 서울의 요지에 우뚝 자리잡고 있다. 클래식 호텔에는 그러한 입지의 힘과, 긴 세월 동안 국빈들과 글로벌 이벤트를 주관해 온 관록으로, 신규 호텔이 절대 가질 수 없는 헤리티지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 글을 통해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특히 애정하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헤리티지를 발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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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택에 초대 받는 경험

그랜드 하얏트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20년 크리스마스였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어려워 너도나도 연말 고급 호텔을 예약했었다. 나도 그 움직임에 동참해 그랜드하얏트를 예약했다. 이태원 역에서 출발해 뚜벅뚜벅 고래등 같은 재벌가 저택의 높은 옹벽을 따라 언덕을 올랐다. ‘저 안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그 다음 집이 궁금해질 쯤 언덕 꼭대기에 다다른다.

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거대한 나무들이 드리워져 있는 정원 뒤로 하늘을 비추고 있는 그랜드 하얏트가 보인다. 큰 나무들에는 어떻게 걸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작은 크리스마스 조명이 드리워져 있었다. 담장, 식물분리대, 바닥재까지 세월의 흔적이 묻은 벽돌로 조성된 아우라 넘치는 정원, 나무 조명 아래를 지나 따뜻한 로비에 도달하는 경험은 담장길 끝에서 마침내 궁금했던 오랜 부자의 대저택에 초대 받는 기분이었다.

5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천고의 공간은 따뜻한 오크 컬러의 벽에 갓을 쓴 조명으로 가득했다. 온기를 머금은 공간, 지금껏 본 적 없는 크기의 크리스마스 트리,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테이블 곳곳 자리한 라운지 너머 드넓은 한강에 반짝이는 윤슬과 강남이 내다보인다.

체크인 후, 짐을 방에 던져두고는 윔블던 같은 인조잔디 코트로 나가 신나게 공을 친다. 깊어지는 밤, 아이스링크엔 프로포즈 이벤트가 열려 백년가약을 시작하는 커플에게 창밖 너머로 축하를 보낼 수 있다. 아침엔 따뜻한 남향 햇빛을 맞으며 다시 강남을 내다보며 컨티넨탈 브렉퍼스트를 즐긴다. 클래식한 뉴욕 영화의 장면과 같은 이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풍부한 어메니티를 갖춘 곳이 그랜드 하얏트다. 이런 고전적인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그랜드 하얏트를 가장 좋아한다.



몸값으로 헤리티지의 가치를 증명한 고참 호텔

2025년 현재 추진중인 신규 5성급 호텔만 10건으로, 서울은 고급 호텔의 새로운 격전지가 되었다. 상품에 있어, 신제품이 쏟아지면 과거의 상품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호텔의 경우 클래식이 장수한다. 타국의 대통령, CEO 등이 머무르고 또 다녀가는 세계적 행사를 열었건 웨스틴 조선 서울, 신라호텔, 롯데호텔, 그랜드 하얏트 등이 서울의 터줏대감 호텔들이다. 호텔업계에서 클래식이 장수하는 것은, 호텔의 본질이 부동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심 밀도가 올라갈수록, 선점된 입지의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1980년대 개관한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한물 간 것이 아니었다. 그랜드 하얏트는 2024년 7300억이라는 국내 호텔 역대 최고의 몸값에 소유권에 손바뀜이 일어났다. 호텔의 입지와 헤리티지가 다시금 시장에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남산의 남쪽 중턱이라는 위치

이태원은 오랜 기간동안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점유되어온 위치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경제개발의 주체였던 재벌 총수 거주지로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언덕은, 조선시대에는 양지바른 묘지의 명당이었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는 당시 권세를 누리던 일본인들을 위한 대규모 필지의 주택단지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사통팔달한 입지 덕에, 한국의 신흥 부자들이 하나 둘 들어오며 부르는게 값이며 장외거래되는, 국내 최고의 주택단지가 되었다.

그랜드 하얏트가 가진 압도적 장점은 이 입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중심이기도 하거니와, 군사학적으로도 방어에 최적화되었다고 일컬어지는, 무엇보다 재벌들이 거주하는 최고의 주거지 입지에서 그들과 같은 뷰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함을 더한다. 그런 차원에서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엘리자베스 2세,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까지 한국을 방문하는 서방의 리더들이 이 호텔에서 투숙해왔다.

한남 토지구획정리지구 평면, 국가기록원
SELRS-P1945-Exterior-Nighttime-View.16x9.jpg?imwidth=1920 강남이 내다보이는 그랜드하얏트의 전경 (그랜드하얏트 홈페이지)



상류 사회의 커뮤니티 허브

그랜드하얏트는 보기 드물게 넓은 부지를 보유한 호텔로, 부대시설이 특히 풍부하다. 수영장, 스파, 피트니스 센터는 물론 테니스 코트와 아이스링크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어메니티들은 새로운 호텔이 우후죽순 세워지는 서울 내에서도 오랜기간 독보적 퀄리티는 물론, 국내 여가 문화를 주도해왔다. 소월로 322에는 테판 등 특별한 날 찾는 특별한 레스토랑이 들어와 있고, 테니스 코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윔블던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코트다. 아이스링크는 서울 크리스마스의 상징으로, 록펠러센터를 연상케한다 (한밤의 아이스링크 프로포즈 패키지도 있다!). JJ 마호니스라는 재즈클럽은 80년대 오렌지족의 아지트였고, 지금도 그만한 분위기를 따라올 재즈바는 없다고 한다. 이처럼 하얏트의 부대시설은 모두가 제각기 매력과 역사를 갖추고 있다.

한편으로 궁금했다. 이 많은 부대시설을 투숙객이 모두 다 사용하지는 않을텐데, 과연 유지비는 어떻게 감당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이래저래 웹을 찾아보았다. 5성급 호텔의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일반 투숙객과 클럽 고객으로 나뉜다. 일반 투숙객(글쓴이와 같은 사람)은 객실 이용료가 곧 매출인 모두가 아는 방식이다. 어메니티 이용에 따른 매출을 일으키는 핵심 고객이 바로 클럽 고객, 회원들이다. 객실 매출이 아닌 멤버십을 통해 연 단위 일정한 현금흐름을 보장하는 고객군이 있는 것이었다. 회원권 매수가 한정되어 있는 만큼, 이들은 호텔의 부대시설을 안방처럼 활용하며(업무상 미팅, 지인 약속, 스파, 운동, 쇼핑, 식사 등) 사교적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코로나 시기, 몸집 큰 5성급 호텔들이 파산을 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중 구조 덕분이다.

그랜드 하얏트의 경우 회원권 매수가 2200매로 한정되어 있다. 24년 기준 회원권 시세는 대략 5500~6000만원선에, 연회비 350만원이다. 평생회원제이며, 결격사유가 없다면 증여도 가능하다고 한다. 즉, 물량이 시중에 풀리기 어려워 대대손손 이어 쓰는 개념의 회원권으로, 하나의 재화이다. 그랜드하얏트는 그런 방식으로 강북권의 중심에서 오랜 기간동안 정재계 인사들의 허브로 존재해왔던 것 아닐까 싶다.

326510598.jpg?k=5f8e37bb8b0ea6712bacaceb57aa5b0fe219114497582e5b85f3c85df1dbbbee&o= 강남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다이닝 라운지 (booking.com)
그랜드 하얏트 아이스링크 프로포즈, 연합뉴스, 2015
국내 최고(最古) 클럽, 제이제이 마호니스, 문화일보, 2018
테니스장 (booking.com)


명성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건축적 디테일

그랜드 하얏트의 설계자는 미국의 건축가 존 모포드(John Morford)다. 그는 하버드에서도 건축 교수로 재직하며 상업공간, 특히 20세기 말 뉴욕, 홍콩, 도쿄, 서울을 상징하는 글로벌 호텔 체인의 건물을 남겼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던 성향으로 그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글로벌 호텔 체인의 아시아 건물을 설계한 그는, 국제 호텔 체인의 표준화된 요건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지역의 고유성과 조화되는 것을 추구했다. 그랜드 하얏트는 견고하고 매끈한 유리 파사드로 포스트 모던한 외관을 지녔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골든 오크 컬러의 목재로 가득하다. 마치 한국의 전통가옥의 인방처럼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디자인의 연장선상으로 객실에 수묵화를 배치하여 전통을 국제 호텔 스타일로 재해석 한 것이다. 이 헤리티지는 호텔이 리노베이션을 거칠때에도 이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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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Hyatt-Seoul-P859-Lobby-Entrance.16x9.jpg?imwidth=1920
로비 (그랜드하얏트 서울 홈페이지)
Grand-Hyatt-Seoul-P1350-Grand-King.16x9.jpg?imwidth=1920 객실 이미지 (그랜드하얏트 서울 홈페이지)

존 모포드는 “God is in details” 라는 말을 자주 하는 토탈 디자이너였다. 호텔 설계의 핵심은 고객의 여정으로, 객실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섬세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특히, 파크하얏트 도쿄는 거의 최초로 호텔 로비가 1층이 아닌 옥상층에 배치되어 호텔의 첫 인상이 도쿄의 파노라마가 될 수 있도록 설계한 케이스다. 마찬가지로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붉은 벽돌길을 따라 들어온 입구에서 호텔 프론트로 가기 위해 코너를 돌면 곧장 남쪽 햇볕이 내리 쬐는 한강 뷰가 쏟아지듯 나타난다. 앞서 언급했던 그랜드 하얏트의 입지, ‘재벌의 뷰’가 전면에 펼쳐지도록 설계되었다.

SELRS-P1946-Exterior-View.16x9.jpg?imwidth=1920 주택가 언더 꼭대기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서울, (그랜드하얏트 서울 홈페이지)

모포드는 “잘 설계된 호텔은 계획이 좋다면 수십 년을 유지할 수 있다. 유행을 따르지 말고, 영혼 있는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설계에 대한 그의 헌신과 언어를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증명하듯 당당히 독보적 헤리티지를 보유한 Grand 호텔이다. 서울의 시간의 켜가 바래지 않고 여전히 빛나고 있는 애정하는 호텔이다.

참고자료

https://www.corebeat.co.kr/article/948

https://www.kueherald.co.kr/news/curationView.html?idxno=51199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edaily1&logNo=223818050284&proxyReferer=&noTrackingCode=true

https://www.mk.co.kr/en/stock/11341650?utm_source=chatgpt.com

https://www.munhwa.com/article/1109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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