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티너리 Dec 10. 2018

#1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한 대학원생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생활기



#프롤로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일상을 '언젠가 글로 남겨봐야지'라는 생각만 해놓고,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흐릿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기 전에, 핸드폰 속에 남겨진 짧은 메모들과 사진들을 꺼내 정리하는 중이다. 그때의 경험과 생각들, 그리고 사진 속에 남겨진 순간들을 되돌아봄으로써, ‘지구 반대편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이야기를 공유해 보려 한다. 





2013 가을: 아르헨티나 가볼래?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13년 가을이었다. 국제관계학을 전공으로, 중남미 지역학을 부전공을 선택한 나는 어느덧 졸업을 해야 하는 4학년에 가까워졌다. 3학년이 끝날 때쯤 논문 주제를 선택해야 됐고, 고민 끝에 관심이 갔던 아르헨티나 정치를 주제로 선택했다. ‘남미 정치학 (Latin American Politics)’ 시간에 배웠던 페론의 포퓰리즘 이야기를 좀 더 깊게 알아보고 싶은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교수는 아르헨티나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오는 것을 제안했다. 경험도 쌓을 겸, 쓸 논문에 깊이도 더 할 겸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대학 프로그램을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큰 고민 없이 교수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우선 -30까지 내려가는 미네소타의 겨울을 피하고 싶었는데, 이건 말할 것도 없이 완벽한 기회였다 (남반구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의 연말은 따뜻하기 때문에). 또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역마살이 낀 팔자인지라, 그 제안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2013 가을: 부에노스아이레스와의 첫 만남


parque 3 de febrero


2013년 9월. 그렇게 미네소타를 떠나 아르헨티나 수도에 도착했다. 약간은 즉흥적으로 시작된 약 3개월 간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생활. 그렇기에 내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 도시는 생각보다 나와 잘 맞았다.


우선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업들은 아르헨티나의 역사, 경제, 정치 역사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워낙 다이나믹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르헨티나였기 때문에, 수업 강의로 들었던 거의 모든 내용들이 흥미로웠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도 '아르헨티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며 꽤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보카 지구의 버스정류장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좋았던 ‘진짜’ 이유는 '놀거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라보카, 레콜레타, 팔레르모, 푸에르토 마데로 등 유명 관광 장소들이 많다. 또한 수준 높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도시 곳곳에 있어 문화생활을 즐기기에도 적합한 곳이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탱고 음악, 축구, 그리고 여유로운 분위기 또한 점점 나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빠지게 만들었다. 워낙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 나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시는 언제나 흥밋거리로 가득했다. 게다가, 값싼 고깃값과 음식 재료 덕분에 거의 매일 등심, 안심, 꽃등심 부위의 스테이크를 (3000-4000원 가격에) 구워 먹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혼자 보고 먹고 즐기는데 완벽한 도시였던 것이다.


av. callao / junin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무르며 분명 어려운 점도 있었다. 처음에 나를 가장 신경 쓰였던 점은 치안이었다. 워낙 치안이 불안하다고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주머니 속 핸드폰을 꽉 쥐고 다녔다. (그리고 실제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둘쨋날에는 ‘새똥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 지리에 점차 익숙해지자, 안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위험하다고 절대 가지 말라는 동네나, 인적이 드문 거리만 피하면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또 다른 점은 낯선 아르헨티나식 스페인어였다.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다른 이탈리아어가 섞인? 듯한 아르헨티나식 스페인어는 나에게 완전히 다른 언어로 들렸다. 그곳 사람들만의 악센트에 익숙해지기 위해 몇 주동안 한참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특이한 악센트도 귀에 익으니 점점 마음에 들었고, 어느새 그들의 발음을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2016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볼까?


3개월 동안의 짧지만 행복했던 아르헨티나 생활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어찌어찌 논문 통과를 했다. 그러고 나서 군대에 들어가 2년을 보냈다. 아무 탈 없이 제대를 하고,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바로 미래에 대한 선택이었다. 한국에 머무르며 대기업에 지원해 볼까? 외국계 회사? 여러 생각을 하며 ‘사회인이 되려’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하디만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국은 좋았지만, 한국의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내가 똑 부러지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내가 항상 관심 있어했던 중남미 지역과 관련된 공부를 조금 더 해보기로 했다. 나에게 맞는, 그리고 금전적 부담이 덜한 나라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3년 전 방문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올렸다. 그곳에 대학원을 다니기로 결심한 후 아르헨티나 대학원에 원서를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 통지서가 날라왔다.


그렇게 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생활이 결정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조금은 '다른' 결정이었다. 대부분 대학원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의 대학원으로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공부하고 싶은 '중남미 지역학'이라는 과목의 특성과 금전적 상황을 바탕으로 대학원을 생각했고, 그 두 가지를 고려했을 때 아르헨티나가 나와 가장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란 도시가 그리웠다. 남미에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살아봤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만큼 끌리는 도시는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스무 살 후반을 보내며 경험하고, 생각하며, 조금 더 성장해 나가기를 원했다.


2017년 2월: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비행기


3장의 비행기 표


2월의 한국. 살을 에는 추운 겨울이 한창일 때,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스엔젤레스행 비행기였다. 지구 대척점에 위치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너무나 멀리 있는 탓에 인천에서 출발하는 직항이 없다. 그곳에 가려면 유럽 대륙에 한번 경유를 하거나, 미국을 경유해서 가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나는 로스앤젤레스-리마-부에노스아이레스를 경유하는 가장 싼 티켓을 샀다. 총 33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뭐 그까짓꺼 참고 가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12시간이 걸려 도착한 로스앤젤레스에서 '현타'가 왔다. 이렇게 왔는데 아직 절반도 안 온 거라고?


calle chile en san telmo


두 번에 비행기를 더 탄 끝에, 목적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 패딩을 싸매고 다니던 한국과는 달리, 도착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날씨는 30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 날씨였다. 나는 두꺼운 코트를 바로 가방에 집어넣고 반팔 차림으로 공항을 나섰다. 그리고 한껏 들뜬 마음으로 도시 북쪽에 위치한 벨그라노 동네에 위치한 미리 알아둔 셰어하우스에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부에노스아이레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도시는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나는 33시간 여행의 피곤한 기분보다, 3년 만에 다시 보는 도시의 풍경에 마음이 들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걸 환영해! "Bienvenido a Buenos Aires!"


내가 셰어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차로 6시간 떨어진 항구도시)에서 온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아르헨티나는 부활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은 남미의 레게톤 음악 속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걸 보자, 한껏 취한 목소리로 '새로 입주한걸 환영한다' 말하며 나를 술자리에 초대했다. 나는 원래 술 한잔에 얼굴이 빨개지는 알쓰였고 33시간 비행 후 맥주를 마시려니 조금 피곤했지만, 머릿속은 "eso no me importa" (그게 뭣이 중요헌디)를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첫날은 (짐도 풀지 않은 채) 아르헨티나 맥주인 킬메스, 나초 안주, 레게톤 음악, 그리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이야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Bienvenido a Buenos Aire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