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을 주문했는데 아직 도착 안했냐?" 엄마는 며칠에 한 번씩 귤이 도착했는지 전화를 하셨다. "왜 도착하지 않지?" 엄마는 다시 배송지에 전화 해 보시려는 것 같았다.
"도착하면 연락줄게."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가끔 뜬금없이 뭔가를 보낼 때가 있다. 일년에 가장 바쁜 시기에 아이들 먹이라며 대게를 한박스 보내기도 하시고, 몇달에 한 번 씩 농사지은 쌀이 배달되어 오기도 한다. 엄마는 결혼하고 집에 쌀이 없을 때 외갓댁에 추수한 쌀가마니가 광에 놓여있는 것을 보며 조금만 얻어 오고 싶었는데 말씀을 못하셨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줄 생각도 않으셔서 그 광에 쌓여있는 가마니를 한참을 쳐다 보다 오시곤 했다고 옛날을 회상하셨다. 그래서일까 때때마다 보내오는 아빠가 농사지은 쌀은 우리집에 배달되어 배란다에 쌓여만 가고 있다. 요즘 밥을 그리 많이 먹지 않으니 안보내도 된다고 해도 엄마는 본인의 상처를 나를 통해 치유하려는 것인지, 본인이 외할아버지 같은 부모가 되고싶지 않아서인지 부지런히도 쌀을 배달시키신다.
며칠 전에는 퇴근하고 집에 오니 현관 앞에 귤이 두 박스가 배달되어 왔다. 박스를 뜯는 순간 크고 작은 쭈글쭈글한 귤들이 마구잡이로 가득 차 있었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귤들을 골라내고 이미 썩은 것도 골라냈는데 귤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노인이 주문한걸 알고 이런 귤을 보낸걸까. 어떻게 노인들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택배박스 앞에 적혀 있든 배송지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귤 두 박스를 배송받았습니다. 그런데 귤 크기도 다 다르고 쭈글쭈글한데다 썩은 것도 많이 섞여 있어서요. 부모님이 이걸 주문한게 맞나요?"
"아, ***님이시죠? 그거 어머니께서 비품으로 주문하신거에요. 팔고 남은 거라 모양이 그렇습니다."
"얼마로 주문하신건가요?"
"네, 한 박스에 만오천원 입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비품인 걸 알고 싼 맛에 주문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아, 비품으로 주문한 거군요. 알겠습니다."
.......
내 직장은 매년 가장 바쁜 시기가 있다. 일을 한지 25년이 되었고 난 25년 동안 한결같이 그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대게를 보냈으니 아이들이랑 먹으라고... 저녁 밤늦게 퇴근하고 대게를 정리하는데 눈물이 났다. 다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싶었다. 유난히 힘든 그 해를 그 바쁜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도 엄마는 우리 아이들이 외가에 방문했을 때 대게를 마음껏 못먹인게 눈에 밟힌다며 대게 한 박스를 배달해 밤새 나에게 손질하게 하셨다. 엄마는 그 대게를 보내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눈에 밟히고 미안하던 마음이 편안해지셨을까. 엄마는 본인의 마음이 더 중요했던 걸까. 25년 동안 딸이 언제 바쁜지 가장 힘든지를 아직도 모른채 엄마 마음에 밟힌 대게를 잔뜩 딸내미 집에 보냈으니 마음이 편해지셨을까.
배송지에서는 보고 주문한 것이 아니고 비품이라고 말했으니 그냥 처리 곤란한 귤을 보낸 것 같다. 손이 가지 않는다. 작년 대게가 아직 냉동실에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