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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켓 Mar 02. 2017

문라이트 (Moonlight, 2016)

: 지금의 나는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영화를 접했을 때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 머릿속, 마음속에 새기고 싶어 지는 작품들이 있다. 내가 처음 <동주>를 봤을 때 그러했고, 이번 <문라이트>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문라이트>는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150여 개 트로피를 수집 한 기록과 브래드 피트 제작, 흑인 주연 영화, 퀴어 영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기사화되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영화에 대해 전문가도 아닌 내가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포스터부터 연출, 배우들의 연기, 담고 있는 의미까지 칭찬할게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i. 리틀, 후안, 블루
또래 아이들보다 몸집이 왜소했던 샤이론은 그 틈에서 '리틀'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 샤이론에게 처음 다가와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마약 거래상인 '후안'이었다. 괴롭힘을 피해 후안의 마약 창고에 숨어들었던 샤이론에게 후안은 '여기보다 나쁘지는 않겠지'라며 문을 열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난 그 장면이 참 좋았다.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는 그 공간이 마치 '리틀'이 보내온 시간 같았고, 문을 열고 빛이 든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후안이 도와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 수가 많진 않지만 후안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던 샤이론은 그와 함께 바다에 간다.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후안은 샤이론에게 수영을 가르쳐 준다. 세상의 중심에 있는 샤이론, 파도를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샤이론. 후안은 그렇게 샤이론에게 스스로 무엇이 될지 정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준 것 같았다. 이후에도 샤이론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목욕을 하고 차가운 얼음물에 세수를 하며 그 기억을 잊으려 애를 쓰고 버텨낸다.


포스터 속의 어린 샤이론은 블루, 리틀의 이야기 사이에 있던 파란 불빛, 샤이론에게 후안은 바다.


ii. 샤이론, 케빈, 레드
청소년이 된 샤이론은 동성애자라는 이유가 덧붙여져 여전히 따돌림을 당한다. 그에게 진심으로 말을 걸어주는 친구는 케빈뿐이다. 바다를 바라보던 샤이론에게 케빈이 다가와 묻는다.


물 좋아해? 불도 소개해 줄게.

그날 케빈은 샤이론을 어루만져 준다. 이런 상황이 처음인 샤이론은 당황해서 케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케빈은 뭐가 미안하냐고 되묻는다.


얼마 후, 샤이론을 괴롭히던 한 아이가 케빈과 게임을 한다. 자신이 지목한 사람을 케빈이 때리는 게임. 만약 케빈이 정말 그 아이를 때리면 케빈이 이기는 것이고, 때리지 못하면 샤이론을 괴롭히던 아이가 이기는 것이 룰이다. 지목당한 사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샤이론이다. 케빈은 결국 샤이론을 때리고 만다. 일어서면 더 다칠 것을 알기에 일어나지 말라고 하지만 샤이론은 꿋꿋이 다시 일어난다. 그 일이 있은 뒤, 샤이론은 괴롭히던 아이를 찾아가 복수를 하고 결국 구치소에 들어가게 된다.


나는 그런 샤이론을 마냥 칭찬할 수는 없지만, 케빈과의 만남 이후에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를 느끼고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찾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리틀'이라 불려 왔던 모습이 아닌 '샤이론'이라는 이름으로써 말이다.


포스터 속 청소년 샤이론의 색은 레드, 샤이론의 이야기 사이에 있던 빨간 불빛, 샤이론에게 케빈은 불.


iii. 블랙, 샤이론, 블랙
성인이 된 샤이론은 케빈만이 부르던 별명인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마약을 거래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케빈에게서 연락이 온다. 요리사가 되었다며 일하는 곳에 샤이론을 초대하고 샤이론은 그를 보기 위해 음식점으로 찾아간다. 과거의 일을 사과하며 예전과 다르지 않게 말을 건네는 케빈. 시간이 늦어 케빈의 집으로 가게 된 둘은 대화를 나눈다. 과거에 알던 샤이론과는 많이 다른 모습에 케빈은 얘기한다.


넌 누구야, 샤이론?

샤이론은 "난 나야."라고 대답한다. 그리고선 케빈에게 자신을 만져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그동안 덮어두었던 샤이론의 진심이다. 그 말 안에, 그리고 블랙이라는 이름 안에 그동안 케빈을 향한 그리움이 담겨있던 것은 아닐까.


'리틀' 혹은 '샤이론'으로 불리던 때의 샤이론은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갖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의지로 꾹꾹 눌러 둔 정체성을 찾는다.


포스터 속 성인 샤이론의 색은 블랙, 샤이론의 이야기 사이에 있던 텅 빈 검은 화면, 자신의 정체성을 모두 받아들인 샤이론 그 자체의 모습.


-바다
위에서 샤이론에게 후안은 바다라고 했지만, 바다 자체로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바다는 각 파트마다 한 번씩 나온다. 나는 이것이 샤이론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된다는 복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후안에게 호모의 뜻과 자기도 게이냐고 묻던 어린 시절의 샤이론은 바다 안에 있다. 그때는 동성애가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던 때이다. 아직 정체성의 확립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케빈이 샤이론을 만져줬던 날은 바다밖에 앉아있다. 청소년의 샤이론은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케빈과의 일을 통해 그것이 더 확실해진다. 그리고 케빈의 꿈을 꿀 때도 파도 소리를 듣는다.


마지막으로 케빈의 집에 도착했을 때 샤이론은 나무들 사이로 바다를 슬쩍 본 후 지나친다. 그 후 위에 얘기했던 것처럼 케빈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한다. 샤이론은 자기의 정체성을 찾은 듯 보였다.


바다를 혼돈이라고 가정한다면 바다에서 점점 멀어지는 샤이론의 모습은 혼돈을 벗어나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영화 역시 바다 바깥에 서 있는 어린 샤이론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샤이론의 마음을 처음 열었던 후안의 말처럼 남이 결정하는 이름이 아닌 자신이 결정한 이름으로써 살게 된 샤이론. 나 역시 언젠가는 자아정체성을 찾고 이 우울감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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