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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켓 Mar 02. 2017

싱글라이더 (A single rider, 2016)

: 인생은 아이러니

*스포일러 있음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님은 광고계에 오랜 시간 몸담고 계시다가 이번에 영화계에 데뷔하셨다고 하는데 데뷔작이 이 정도라니,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또한, 과거 출연작들에서 연기력 부족이라는 혹평을 받아왔던 소희는 한층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병헌과 공효진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영화가 시작될 때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가 나온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
재훈(이병헌)은 자신이 성공하기 바쁠 때 가족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으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무언가에 몰두해 있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재훈에게는 성공하는 일이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옆에 늘 있었던 수진(공효진)과 진우(양유진)를 살피지 못했고 내려갈 때, 즉 삶을 포기했을 때가 돼서야 소중한 이들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부실 채권 사건 이후 가족이 있는 호주행 티켓을 끊는 모습을 보며 그 꽃은 '가족'이었구나 생각했다.

호주에 도착한 재훈은 지나라는 한국인 워홀러를 만난다. 안 좋은 일을 겪은 지나는 그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만, 재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거절한다. 좌절하고 울부짖는 지나를 보며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에게 도움 주지 못한 일이 생각난 걸까? 재훈은 처음 보는 사이지만 그녀를 위해 함께 길을 나선다. 같이 다니는 동안 그는 가족에게 왜 그렇게 소홀했는지, 다 뺏기고 이용만 당하면서 뭘 그렇게 우아한 척 살았었는지 그리고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후회 섞인 말을 한다. 이런 대화들을 들으며 어쩌면 지나라는 사람은 재훈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아들이 아플 때 맨발로 뛰쳐나가는 크리스의 모습을 보며 가장으로서 자신의 지난날을 곱씹어 보지는 않았을까.


재훈은 수진의 곁에서 맴돈다. 한국에 있을 때, 엄마로 살아가며 어릴 적부터 다루던 바이올린마저 놓았던 수진은 현실에 안주해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남편의 권유로 호주에 가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수진은 잃었던 꿈을 되찾고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재훈은 그런 수진을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감독은 '수진'을 통해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마저 거부한 채 살아가던 그녀가 점점 본인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꽃'의 또 다른 의미이다.

재훈은 지나를 찾아간다. 자고 있던 그녀를 깨워 데려간 곳은 다른 한국인 워홀러들이 지내던 바로 그 집이었다. 그곳에서 지나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는 치치가 죽었다는 소식을 말하는 수진과 교차된다. 긴 시간 동안 이해되지 않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설명된다.


영화는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이상했던 장면들을 처음부터 다시 훑어준다. 국숫집에서 지나는 아직 죽기 전이라 재훈을 보지 못한 듯하다. 비틀거리며 다시 나타난 지나는 아마 죽은 후의 모습인 것 같다. 또한 크리스의 아내는 코마 상태였기 때문에 재훈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수진과 가까운 사이로 지내며 스텔라도 알고 있는 재훈의 존재를 바로 앞에서도 알아보지 못한 크리스 역시 이해가 간다. 이처럼 재훈을 보았던 모든 이들은 죽은 사람이거나 혹은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재훈을 따라다니던 치치, 옆집의 할머니 그리고 다리 위 인부까지. 이런 장면들을 통해 '싱글 라이더'라는 제목처럼 혼자 여행하는 재훈의 영혼을 보여줬던 것이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재훈이 행복을 위해 선택한 것들은 자신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또, 삶을 포기했을 때 지난 기억들이 밀려들어와 후회를 한다. 수진 역시 재훈의 죽음으로 가장 슬픈 순간, 오케스트라 합격이라는 가장 원하던 것을 얻게 된다. 어차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이라면, 너무 올라가는 것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지칠 땐 주위의 꽃과 함께 쉬어가면 된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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