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화를 서로 말을 주고받는 단순한 활동이라 여기고, 단지 대화를 나누는 활동 자체로 대화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내가 말을 하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말의 의미 그대로를 상대가 받아들여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나 또한 상대가 하는 말을 상대가 의미한 바 그대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하여 사실상 우리의 대화는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완성이라는 ‘미완성’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 이상의 활동으로, 서로의 말을 서로의 ‘맥락’ 안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복잡한’ 인지 과정을 거쳐야만 겨우 완성 근처에 도달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신비로운 정신 작용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맥락이 없는 말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 맥락 없이 해석된 말은 완전히 새로운 전혀 다른 말이 된다. 말 그릇인 언어 자체는 맥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맥락을 정확하게 읽어내려는 진지한 자세와 각고의 노력 없이는 서로의 말을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즉, 타인이 하는 말 그 자체만으로 그 사람의 생각이나 속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서로의 맥락을 최대한 파악할 수 있어야만 서로가 하는 말의 ‘진짜’ 의미에 도달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진정 본질적으로 ‘대화다운’ 대화가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화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전제로 할 때 본래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사실 허울뿐인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말을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의 맥락을 설명해주려는 친절을 결코 베풀지 않고, 상대의 말을 듣지만 상대의 말의 배경이 되는 맥락을 읽어내고자 하는 수고를 거의 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말이 의도한 의미 그대로 타인에게 자동적으로 이해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의 말을 별다른 의식적 노력 없이 그저 자의적으로 해석해 버린 후에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곤 한다. 우리가 서로의 맥락을 무시하고 대화를 한다면 우리는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꼴이 되고 만다. 맥락을 말해 주지 않고 이해받기를 기대하지 마라. 맥락을 읽지 않고 타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오해를 버려야 한다.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라는 대화의 진정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고 가는 말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서로의 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맥락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가는 방향으로 대화의 흐름을 형성해나가야 한다.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나의 맥락을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소개하는 일에 보다 더 신경을 쓰고,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상대방의 맥락을 파악하는 일에 집중하여 자의적 판단과 해석의 오류를 최대한 방지하면서 대화를 의식적으로 빚어나가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시간과 공을 들여 정성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고, 서로 함께 대화를 완성해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마치 누구나 당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고정된 상황적 맥락이 있는 것처럼, 마치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상식적 배경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찍고 배척해버린다. 하지만 사실 고정된 하나의 맥락과 상식적 배경은 없다. 우리 모두의 맥락은 천상만태 각양각색 모두 다르다. 맥락의 완벽한 일치는 불가능하다. 맥락은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맥락을 ‘나눔’으로써 가능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맥락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설명할 줄 아는 능력과 색안경을 벗고 다양한 맥락 속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화의 비법은 바로, 맥락 나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