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청주의 시작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처음 이 질문을 만났을 때, 제 마음 한구석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책은 언제나 개인의 삶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고 믿어왔지만, 도시 전체, 나아가 한 나라의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상상은 그 자체로 낭만적이었습니다. 또 현실감 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 상상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1998년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의 한 사서가 사람들 앞에서 소박하지만 거대한 꿈을 꺼내 놓았습니다.
“만약 이 도시의 모든 시민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이 사서의 꿈을 담은 질문은 바람처럼 퍼져 나가면서 마침내 ‘Seattle Reads’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의 원북 원시티 캠페인이 탄생했습니다. 한 개인의 낭만적인 상상이 어떻게 도시를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서 낸시 펄은 어릴 적 도서관에서 책 속에 파묻혀 살던 소녀였습니다. 그는 독서가 자신의 삶을 구했다고 말하곤 했죠. 어린 시절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책으로 견뎌냈던 그에게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습니다. 낸시 펄에게 독서는 살아남는 힘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다리였습니다. 그런 그가 품었던 ‘모두가 같은 책을 읽는 도시’라는 상상은 단지 낭만의 언어가 아니라, 문학을 통해 공동체를 구원하려는 치열한 실천이 되었습니다.
이후 시애틀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곧 시카고로 이어졌습니다. 2001년, ‘One Book, One Chicago’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 실험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같은 책을 읽고, 그 책을 주제로 대화하고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장이 열린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내가 사는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책을 펼치고 있다면? 출근길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심지어 길을 걷는 이웃들과도 자연스럽게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도시의 공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시카고의 원북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책 선정’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시카고가 시민들과 함께 읽을 책으로 선택한 작품은 바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였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고전입니다. 인종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에 맞서는 개인의 양심을 다룬 이 작품은 단순히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드러낸 것에 그치지 않고, 인류 보편의 윤리와 용기를 이야기합니다. 부 레들리라는 인물은 단지 은둔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흑인 청년 톰 로빈슨은 근거 없는 공포와 편견 속에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립니다.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는 앵무새를 해치는 것처럼,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고통을 당한 그들이 바로 앵무새였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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