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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Jan 25. 2023

목욕값

 |  값을 수 없는 빚

작년부터 말썽이던 어머니의 오른쪽 어깨가 설날을 앞두고 결국 수술실로 향했다. 찢어진 인대를 연결하는 수술을 하시고 설 연휴 전후로 꼼짝없이 입원실 침대를 차지하고 계신 어머니. 세상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강인한 나의 어머니는 수술 후 딱 3일만 힘없는 환자 신세를 허락하셨다. 좁은 침대와 복잡한 병실에 보호자 따위는 귀찮다며 가족을 다 돌려보내셨다.


아버지를 포함해 우리 가족 누구도 감히 서열 1위인 어머니의 대쪽 같은 결정에 토를 달 수 없다. 불안하고 안쓰러운 자식들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설날에도 화상 통화로만 손주들 세배를 받으셨다. 출근하랴 애들 챙기랴 매일 피곤할텐데 설연휴 동안 집에서 밀린잠도 좀 자고 푹 쉬라며 과년한 딸자식의 컨디션을 랜선으로 케어하신다.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들을 말은 아니었지만 '네~'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런 어머니가 수술 실밥을 풀고는 내게 병실 방문을 허하는 전화를 하셨다.
“어~ 큰 딸! 머리도 등짝도 근질근질하네~ 병원 샤워실에서 샤워 좀 시켜줄 수 있나~? 오후 2시쯤이 좋겠는데~”
아침부터 올 필요도 없고 오후에 물리치료받기 전 딱 2시가 적당하겠다고 짚어 주신다. 정말 못 말린다.


목욕을 시켜 드릴 때 입을 얇은 나시티에 반바지, 장갑형 극세사 타월과 목욕 용품을 꼼꼼히 챙기고 머리를 질끈 묶은 다음 시간 맞춰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1층 로비까지 마중 나와 계신 어머니가 나를 환대해 주신다. 운동삼아 걷고 있었다며 마치 병원 직원인 양 나를 안내하는 모습을 보니 회복이 잘 되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놓이기는 했다.



샤워실은 넓었다. 어머니가 환자복과 어깨 보호대 벗는 것을 도와드려야 했다. 도대체 화장실은 어떻게 혼자 가시는 건지 염려스러웠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샤워기 앞 의자에 앉은 어머니의 머리에 적당히 온도 조절을 한 물줄기가 내려앉았다. 부끄럽지만 그때 알았다! 45년을 살면서 내가 어머니 머리를 감겨 드리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구나!


어느새 70이 넘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힘이 없었다. 한 줌에 잡히는 적은 머리숱은 내 작은 한숨만 했다. 비누칠을 듬뿍 한 극세사 타월을 내 힘대로 빡빡 밀기엔 어머니의 피부가 너무 얇았다. 몰랐다. 내가 영원히 비빌 수 있는 큰 언덕 같던 어머니가 이렇게 작은 줄을. 어머니의 발가락 끝을 뒤덮은 두터운 각질들을 아무리 문질러도 내 미안함과 속상함은 다 씻겨지지 않았다.


뒤통수에 뽕긋하게 드라이까지 넣어 드리고 나니 준비해 온 반바지와 나시티는 흠뻑 젓었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몸이 조금만 더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로도 자식들 마음 쓰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강한 모습만 보이려 애쓴 어머니의 낡아가는 육신 앞에서 오늘 나의 수고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수건을 깨끗이 빨아와 병실 한켠에 널었다. 내게 허락된 임무는 딱 거기까지.
“아유~ 개운하네~! 개운해!! 고마워~ 목욕값은 장부에 달아놔라~ 퇴원하면 정산해 줄게~”
농담을 하며 홀로 물리치료실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나가는 어머니. 이제 집에 가란다. 저녁 드시는 것도 거들어 드리면 좋겠는데 포크로 잘~ 먹고 있다며 단호히 거절하신다. 퇴원하는 날도 절대 오지 말라 하신다. 주인없는 침상앞에서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는 내 손이 괜시리 기웃거리며 시간을 끌어본다.


45년 살뜰히 나를 살펴주신 값이 끝없이 적혀있을 어머니의 장부 끝에 목욕값 따위가 염치없는 점처럼 찍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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