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시인의 시와 도리스 실세도의 인스톨레이션
구름이 풍요롭고
하늘이 맑아서 기분이 들뜬,
집중력이 떨어져 사소한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을은,
감성을 한껏 높여주는 재주가 있는 듯하다.
몇 번째로 맞이한 가을인지
헤아려보기도 하고,
시간을 세월이라는 길이로 늘리기도 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꺼내 읽은 이성복 시인의 시 한 편.
도리스 실세도
”세월의 집 앞에서
- 이성복
하늘엔 미루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다.
세월의 집, 이파리를 뒤집으며 나는 놀고 있었다.
만난 수 없음, 나의 눈도 뒤집어 줄려?
개울엔 물먹은 풀들이 조금씩, 말라비틀어졌다.
어린 시절을 힘겹게 보낸 사내들도,
무색의 꽃, 절름거리는 방아깨비, 모두 바람의 친척들.
그리고 산꼭대기엔 매일 저녁
성냥개비만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다.
날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밥도 안 먹고사는
사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중략>
도리스 실세도
도리스 실세도의 인스톨레이션 작품들이
이성복 시인의 세월의 집 앞에서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좁은 의미의 해석이라는 걸 알지만,
이렇게 연결해 본다.
눈 감고 떠올리는 가을 하늘은
언제나 맑고 높은 하늘이었다.
오늘,
눈에 들어온 하늘이 관념 속에 사는 하늘과 흡사해서
가을과 연관된 단어들이 하나 둘 내 마음을 방문했다.
토요일인 맑은 가을 하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떠올렸고,
문득 편지를 써서 보내고 싶은 그리움을
살랑살랑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에다 썼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