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단어를 써 놓고 기다림을 떠올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 놓고 그리움을 떠올리는
그러한 관계로 이어지는데도 끝나지 않는 사랑도 있다.
이론적으로나 관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경지의
오르막길 같은 사랑이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고정희 시인의 시에서도 여자는 사랑한다.
기다리고 그리워하면서 사랑을 믿는다.
매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기자기한 사랑과는 다른 풍경이고
가슴 시리게 찡한 사랑이다.
남녀관계가 아니라도 모든 관계의 바탕엔
이러한 사랑이 들어앉아있지는 않을까?
살면서 어떤 사랑을 해 봤는지, 되돌아본다.
“관계
- 고정희
싸리꽃 빛깔의 무당기 도지면
여자는 토문강처럼 부풀어
그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옥수수 꽃 흔들리는 벼랑에 앉아
아흔 번째 회신 없는 편지를 쓰고
막배 타고 오라고 전보를 치고
오래 못 살 거다 천기를 누설하고
배 한 척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왔다
갈대밭 둔덕에서
철없는 철새들이 교미를 즐기고
언덕 아래서는
잔치를 끝낸 들쥐떼들이
일렬횡대로 귀가할 무렵
노을을 타고 강을 건너온 그는
따뜻한 어깨와
강물 소리로 여자를 적셨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쁜 탓으로
마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빼놓은 마음을 가지러 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여자는 백여든아홉 통의 편지를 부치고
갈대밭 둔덕에는 가끔가끔
들것에 실린 상여가 나갔다.
여자의 히끗히끗한 머리칼 속에서
고드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완벽한 겨울이었다 "
이기적인 사랑이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사랑이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일 수 있는 성질일까?
그러한 경계를 나눌 수 있다면 그건 아도 사랑이 아니지 않을까?
현재 내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
그려보니,
기다림과 그리움이 질펀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