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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Nov 05. 2024

당신이 삼킬 수 없는 것은?

평가하는 일은 언제나 버겁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에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도 

매 학기 평가 기간이 되었을 때마다 몸살처럼 열이 난다. 

그나마 학생들의 평가야 내 과목 하나 정도의 평가가 

상대방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결정타는 아니라 

열이 나는 정도에서 쉽게 털고 일어나는데 

한 사람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취업을 결정하는 평가는 훨씬 더 마음이 무겁다. 

삼킬 수 없는 무엇인가가 목에 걸린 듯한 기분과 만난다. 

그렇게 어렵지만 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기에 

오늘도 역할을 무사히 해냈다. 



언젠가 읽었던 

나희덕 시인의 <삼킬 수 없는 것들>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나는 지금처럼 여리지 않았었던 것일까? 

전쟁에서 싸우는 군인만큼 용맹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때라 

삼킬 수 없는 것은 <가시> 하나라고 생각했다. 

말, 침, 밥, 물은 아주 잘 삼켰고, 

슬픔, 분노도 꾸역꾸역 삼켰었다. 

이상한 일은

한 해를 더 살아낼수록 강해지는 게 아니라 

약해지는 것이다.

몸만 약해지는 게 아니라 

마음도 약해지고 관념도 허물어지는데,

삼킬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늘었다. 

누구나 다 그럴까?



”삼킬 수 없는 것들


 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 여러 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입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서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


 나희덕 시인의 야생사과에서 발췌




어느 한 날, 

어쩌면 삼킬 수 있는 것보다, 

삼킬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아질 날이 올 수도 있다.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을 더 치열하게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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