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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Sep 25. 2020

갈등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나?

싸우면 키큰다는 말의 의미









장면 1)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3학년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다. 아이들 중 양파를 싫어하는 미림이가 양파를 급식실 바닥으로 슬쩍 버린다. 마침 이걸 본 옆자리의 은비가 말한다.




" 너 급식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양파 먹기 싫어서 버리는 거 다 봤어."


그 말을 들은 미림이가 당황하며 대답한다.


" 버린 거 아니야. 옆에 놓으려다 떨어뜨린 거야."


그러자 은비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 뻥치시네. 네가 일부러 버린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급식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미림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달아나듯 교실로 간다. 그러자 은비도 재빨리 남은 음식을 버리고 뒤따라간다.






장면 2)




미림이는 교실로 오자마자 서둘러 가방을 메고 나가려 한다. 하지만 뒤쫓아온 은비에게 가로막힌다.




" 야, 어딜 도망가냐? 너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토낄라 그러지? 내가 다 알어."


그러자 미림이가 은비를 옆으로 밀치며 반박한다.


"아니야, 나 엄마가 빨리 오라 그랬단 말이야. 빨리 비켜."


그러자 은비가 아이의 가방을 잡아채며 말한다.


" 뻥치시네. 너 학원차 타고 토낄라 그러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냐?"




가려는 미림이와 못 가게 막는 은비가 서로 밀치다 교실 바닥에 같이 넘어져 나동그라진다. 미림이가 재빨리 일어나 복도를 내달린다. 그러자 은비가 다른 아이들에게 소리 지른다.




"야, 범인이 도망간다. 붙잡아!"




범인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복도를 막아선다. 미림이가 밀쳐내려 애써 보지만 역부족이다. 은비가 일어나며 외친다.




"너네들 잘했어. 드디어 범인 체포!"




미림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은비를 떠민다. 은비는 비틀거리다 칠판에 부딪힌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나머지 아이들이 웃는다. 그 무렵, 식사를 마친 담임교사가 들어온다.






장면 3)




교사를 보자 미림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교사는 미림이를 달랜다. 미림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이은비가 때렸어요. 내 가방을 막 잡아당겼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바닥에 꽝 넘어졌잖아요."




미림이는 교사에게 벌건 팔꿈치를 보여준다. 교사가 미림이의 팔꿈치를 어루만지며 등을 토닥여준다. 그 상황을 본 상대 은비도 교사에게 가서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그게 아니구요. 홍미림이 지금 개뻥 치고 있는 거에요. 지가 양파 몰래 버려놓구선 토낄라 그러잖아요. 그리고 쟤도 저 밀쳤어요."




교사는 두 아이가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특별한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교사는 두 아이와 주변 아이들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다. 그러고 나서 <친구를 기분 나쁘게 하는 말>, <급식실에서 화나는 일이 생길 경우 친구와 다투지 말고 선생님께 먼저 알리기>, <'개뻥'이라는 말과 '토끼다'라는 비속어의 사용 자제>를 내용으로 훈화한다. 잠시 뒤 두 아이는 교사 앞에서 화해한다.






장면 4)




담임교사가 두 아이이의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그 나이 또래에 흔히 있는 다툼이며 적당한 훈화를 했고 교육적으로 화해를 시켰다는 내용으로>상황 설명을 하고 가정에서의 후속 지도를 당부한다.





장면 1부터 장면 4까지는 흔히 교실에서 있는 일이다. 아이들의 다툼은 매 쉬는 시간마다 몇 건씩 일어난다. 아이들은 늘 다툰다. 친구가 내 앞에 섰다고, 내 급식이 친구 급식보다 더 적다고(혹은 많다고), 심지어 교사가 자기를 더 좋아할 거라며 다툰다. 아이들은 상대가 빈틈을 보이면 여지없이 공격한다. 공격받은 아이는 더 강하게 맞받아친다. 경험으로 미뤄 보건대 3학년 아이들(열 살) 열 명 중 세 명은 상대가 울 때까지 공격한다. 과연 인간의 공격성의 끝이 어딘지, 상대에 대한 측은지심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싶다. 나머지 일곱 명 중 네 아이는 괴롭힘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구경 삼아 즐긴다. 그중에는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친구들처럼 낄낄대는 분위기에 편승한다. 남은 세 명 중 두 아이는 공격받는 아이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나서지는 않는다. 그랬다가 자기도 공격받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결국 약한 아이 편에서 가해 아이들과 맞서는 아이는 열 명 중 한 명 꼴이다. 이는 성인 사회의 비율과 비슷하다.


아직 사회화가 되지 않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원시 인류가 지녔던 공격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덕분에 사냥이든 채집이든 약탈이라도 해서 멸종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유전된 기질일까. 그래서 난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해 회의적이다. 선한 인간은 태어나지 않으며 다만 교육과 자기 성찰을 통해 만들어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다툼 중 교사에게 알려지는 건 일부다. 아이들은 어떤 사건은 선생님께 알리고(일러바치고) 어떤 건 모른 척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괜히 알렸다가는 친구들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이들의 다툼은 더 교묘하고 비밀스러워진다.




교사가 있을 때에는 아이들도 평화로워 보인다. 아이들이 교사를 의식해 다툼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교사가 아주 엄격한 분위기를 유지하면 아이들은 아무 일 없어 보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처럼 교사가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감히 어떤 아이가 다투려 할 것인가. 그러나 그런 방식은 교육이 아니다. 그저 잠시 폭력성을 감추게 할 뿐.




학교장은 아이들 다툼을 줄이는 것에 신경을 쓴다. 교사더러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 가까이에 있어달라고 요구한다. 자리를 비웠다가 다툼이 생기면 교사에게 책임을 지운다. 그렇다 보니 교사들은 화장실 갈 시간도 내기 어렵다. 이럴 때 교사에게 요구되는 과업은 아이들의 통제, 감시다. 하지만 언제까지 단지 다툼을 막기 위해 교사가 아이들을 감시할 것인가. 아이들은 곧 졸업을 할 것이고 사회에 나갈 것이다. 더 이상 감시와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 학교에서 억눌려진 공격성이 드러날지 모른다. 이런 경우 학교의 역할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교도소와 닮는다.




살아남기 위해 키울 수밖에 없었던 원시 인간의 공격성은 대상이 사냥감이었을 것이다. 개명한 요즘 시대에 더 이상의 사냥감은 없다. 사냥감은 없는데 공격성은 남아 있으니 같은 인간을 향해 공격하는 건 아닐까. 현대 문명사회에서 아이들의 공격성은 어떻게 순화되어야 할까. 호화로운 삽화가 가득한 도덕 교과서나 칸트의 정언명령 같은 철학이면 될까. 어려운 문제다.




교사로 살아오면서 여러 제자들을 만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인연이 끝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다양한 사회관계 망 덕분에 제자들의 삶을 엿볼 일이 많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는 걸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내 교실에 초등학생으로 있을 때를 돌이키게 된다. 그걸 통해 나름 터득한 사실은, 어릴 때 크고 작은 갈등을 자주 겪은(자신의 공격성을 자주 확인한) 경험이 많은 아이가 커서도 공격성 조절을 잘하며 산다는 것이다. 어릴 때 그렇게 아웅다웅하던 아이가 직장에서 주어진 직책을 번듯하게 해내고 아이들도 잘 키운다. 반대로 어릴 때 자신의 공격성이나 분노를 억누르던 아이의 삶은 녹록지 않은 성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말썽꾼이던 제자들이 동창 모임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석한다. 성인이 된 그들은 내 앞에서 자기가 어릴 때 말썽 부렸던 일, 때문에 내게 야단맞았던 일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웃는다. 그랬던 자신이 어느새 정신을 차려 노력을 하고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편입된 과정을 자랑하듯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일은 내게 큰 보람이다. 그런 제자의 웃음을 보면 자신감이 느껴져 나까지 흐뭇해진다. 반대로 억누르던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말이 없거나 아예 모임에 참석을 안 한다. 그런 아이들 소식을 물어보면 제자들도 소식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친구관계를 꾸준히 이어가지 못하고 각자 점점이 흩어져 존재감 없이 분투하는 성인으로 자란 것이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로 하여금 이왕이면 더 어릴 때 여러 형태의 갈등을 통해 자신의 숨은 공격성과 분노를 스스로 확인하게 해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일단 다퉈보게 하고 다툼의 패턴을 읽게 한 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주로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는지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다툼에서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 표출 방식에 익숙해지면 그때 마찬가지로 아이 내면에 숨어 있는 양심을 살짝 꺼내보게 한다. 내가 친구에게 했던 공격 의지가 친구를 어떻게 좌절시켰는지 보게 하는 것이다. 나의 공격성이 상대의 분노를 자극했을 때 나의 공격성과 상대의 눈물은 결국 같은 양의 아픔으로 나타난다는 걸 느끼면서 측은지심이 생겨날까 해서다. 측은지심을 가르치려면 자신들이 다툰 이유와 과정, 다투고 나서 느끼게 되는 찝찝함과 죄책감 같은 불편한 감정들을 일일이 분석해 주어야 한다. 자살한 사람의 자살 이유를 보인 입장에서 찾아가는 <심리 부검>이라는 용어를 본떠 내 마음대로 지은 이름은 <갈등 부검>이다. 그러려면 아이들의 다툴 때 초반에 개입해서 무마하기보다 다툼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동심리 책에도 그렇게 나온다. 그런 과정이 가장 교육적이라고. 그런데 이게 고역이다. 서른 명 가까운 아이들 가득한 교실에서 아이들의 갈등은 일 대 일로만 이뤄지지 않고 일 대 다수, 다수 대 다수가 엉켜 있어서다. 그렇다 보니 하나의 갈등을 부검하는 일이 엉킨 실타래를 푸는 느낌이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일부 학부모님들로부터 온다. 자기 아이가 갈등 상황에 놓이는 걸 원치 않는 학부모님들이 있다. 그분들은 자기 아이가 갈등(다툼) 없이 교실에서 얌전히 지내기를 바란다. 다른 아이들이 자기 아이를 공격할지 모를 가능성을 교사가 처음부터 차단해 주기를 원한다. 그분들과 상담해보면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또래보다 약했어요. 안 그래도 늦되는 것 같아 걱정인데 선생님이 감싸 주시면 좋겠어요."


"요즘 아이들은 다들 오냐오냐 키워서 극성이잖아요. 근데 우리 아이는 순둥이라서 그런 애들 못 당해요."


"아이가 유치원에서 한 친구에게 오래 괴롭힘을 당했는데 유치원에서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더라고요. 상처가 되더라고요."


"아이가 좀 더 크면 갈등도 스스로 헤쳐나가겠죠. 그때까지는 선생님이 우리 애 편을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장면 5)




그날 저녁, 미림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온다. 선생님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거니 했는데 집에 온 미림이에게 물어보니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아 확인할 것이 있다는 내용이다. 미림이 말로는 상대 아이는 전부터 자기 아이를 자주 놀려 괴로워했는데 그날도 양파 흘린 걸 트집 삼아 선생님에게 이르겠다고 협박을 했으며, 집에 가려는데도 못 가게 하고 친구들과 공모해 아이를 넘어뜨려 다치게 했다고.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의 보호를 못 받았으니 미림이가 얼마나 무서워했겠느냐. 이런 사정을 선생님은 알고 계셨느냐고 묻는다. 아이들 먼저 먹이고 나중에 식사를 하느라 늦게 교실로 와서 사실을 알았으며 처음부터 예방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교사는 말한다. 학부모님은 상대 아이 부모에게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고 싶으니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교사는 죄송하지만 연락처를 직접 알려드릴 수는 없고 학교에서 상대 아이를 다시 불러 소상히 내용을 파악해 지도하고 알려드리겠다고 말한다.






장면 6)




다음 날, 어제 다퉜던 두 아이가 등교 버스에서 만난다. 양파를 흘렸던 아이가 상대 아이를 보자마자 먼저 말한다.




"이은비, 너 인제 디졌어. 우리 엄마가 학교폭력으로 신고한대. 나한테 어제 언어폭력이랑 신체폭력 했잖아."


"무슨 폭력? 언어폭력이랑... 신... 뭐?"('신체폭력'이라는 말은 3학년 아이에게 어려운 용어)


"급식실 선생님한테 나 일른다구 막 놀렸잖아. 넘어지게도 하고."


"지가 먼저 양파 버렸으면서. 그리고 내가 급식 선생님한테 언제 일렀냐? 안 일르구 봐줬잖아."


"야, 나 양파 안 버렸어. 이따 먹을라구 살짝 식탁에 놓을라 그러다가 떨어진 거야."


"뻥 치시네. 지난 번에도 양파 버리다 급식실 선생님한테 혼났으면서."


"나 혼 안 났어. 선생님이 다음엔 그러지 말라고 말만 했단 말이야. 그게 혼내는 거냐?"


"그런데 너 또 양파 버렸잖아. 그래도 너 혼날까 봐 급식 선생님한테 말 안 했는데. 왜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냐. 치사하게."


"니가 언어폭력이랑 신체폭력 하니까 그렇지."


"너도 어제 나 밀었잖아. 나 칠판에 꽝 부딪혔어. 근데 왜 너만 신고할라 그러냐?"


"야, 누가 내가 신고한대? 우리 엄마가 신고할 거라 그랬지."




학교 폭력으로 신고할 거라는 말에 겁을 먹었을까, 은비 얼굴이 붉어지나 싶더니 잠시 후 버스 손잡이를 잡고 훌쩍거린다. 그걸 본 미림이는 좀 놀랬는지 울지 말라고 은비 어깨를 토닥거리지만 은비는 손을 뿌리치며 고개를 돌려 훌쩍거린다. 미림이는 난감한 표정으로 은비를 본다.






장면 7)




교실에 들어오는 두 아이를 교사가 부른다. 아까 울던 은비가 더 큰 울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선생님, 저는 언어폭력이랑 신체폭력 안 했는데 홍미림이 나를 학교 폭력으로 신고한대요. 엉엉."


"야, 누가 내가 신고한다 그랬냐? 우리 엄마가 한다 그랬지, 으이구."


"야, 니가 니네 엄마한테 다 말하니깐 그렇지."


"야, 너 어제 나한테 언어폭력이랑 신체폭력 했잖아."


"야, 니가 양파를 버리니까 그랬지. 엉엉."


"야, 나 양파 안 버렸어. 나중에 먹을라고 식판 옆에 내려놓다가 떨어졌다니깐!"


"그럼 왜 나를 학교 폭력으로 신고할라 그러는데. 엉엉."


"내가 신고하는 게 아니구 우리 엄마가 그럴 거라 그랬다니깐."




은비가 계속 울자 미림이도 따라 울기 시작한다. 두 아이가 울음을 멈추기를 기다려 교사가 끼어든다.




"어이구, 큰일 났네. 아침부터 두 명이나 울어서 어쩌나? 1교시가 체육이라서 피구하러 나가야 되는데. 울면서 피구하면 이상하잖아. 근데 너네 왜 울어?"




먼저 울던 은비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한다.




"홍미림이 저 학교 폭력 신고하니깐 그렇죠."


"그래? 그럼 선생님이 미림이한테 물어봐야겠네. 미림이는 은비를 왜 신고하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요. 우리 엄마가 은비를 학교 폭력으로 신고한다 그랬다니깐요. 저한테 언어폭력이랑 신체폭력 했다고요."


"헉. 어이구, 큰일 났네. 미림이 엄마께서 많이 속상하셨나 보다. 근데 우리 반 피구는 어떡하지? 아까 체육 선생님이 피구 공 새 거 꺼내 주신다 그러던데."




피구한다는 말에 두 아이 울음 구경을 하던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빠져나간다. 교사가 두 아이에게 말한다.




"선생님이 미림이한테 양파 못 먹겠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말할걸. 그랬으면 미림이가 양파를 이따 먹으려고 살짝 안 내려놔도 되었을 거고 바닥에 떨어지지도 않았을 거잖아. 그럼 은비도 미림이가 아까운 양파를 안 먹고 버려서 속상하지도 않았겠지? 그럼 급식 선생님께 말씀드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


"네, 근데 홍미림 엄마가 저를 신고한다고 이미 그랬다니깐요. (다시 울기 시작하며) 신고하면 학교에도 못 오면 어떡해요. 선생님이 미림이 엄마한테 카톡 보내주시면 안 돼요?"


"아, 그러면 되겠구나? 근데 미림이 엄마께서 어제 일로 아직도 속상하시면 어떡하지? 어제 미림이를 친구들이 못 가게 막고 가방도 잡아당겼다던데... 맞지, 미림아?"


"네, 어제 은비랑 김규민이랑 한경훈이랑 김소민이랑요."


"헐. 여러 친구들이 미림이 한 명한테 그런 거야? 야, 그건 폭력 맞네. 미림이 엄마께서 신고하셔도 할 말 없겠다야."




교사가 미림이 편을 들자 은비의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그걸 본 미림이가 교사에게 제안하듯 말한다.




"선생님, 그럼 제가 우리 엄마한테 은비 신고하지 말라고 말해보려 그러는데 핸드폰 전원 잠깐만 켜도 되죠?"


"전원이야 켜도 되지만... 너네 엄마가 엄청 속상하실 텐데 말을 들어주실까? 나라도 내 딸이 친구들이 밀어서 꽈당 넘어지면 엄청 속상하겠네."


"그래도 전화해 볼게요. 사실 저 어제 별로 안 아팠어요. (자기 팔꿈치를 걷어 보이며) 봐요. 상처 없죠?"




미림이가 엄마와 통화를 하고 와서 은비에게 말한다.




"야, 우리 엄마가 신고 안 한대. 대신 나랑 친하게 지내래."




은비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눈물을 닦으며 웃는다.




"와, 미림이 엄마 대단하시다. 선생님 같으면 너무 속상해서 안 봐주고 싶을 수도 있는데."




미림이가 은비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장면 8)




아이들 하교 후, 교사가 미림이 어머님께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한다. 어머니는 미림에게 언어폭력, 신체폭력에 해당함을 설명해 주셨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은비를 신고하겠다는 말씀까지는 안 하셨는데 미림이가 확대해석한 것 같다고 하신다. 두 아이가 화해를 했으므로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며 앞으로 교사가 두 아이를 잘 살펴주십사 부탁하는 말을 하면서 한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하신다.




"선생님, 우리 미림이가 작년에도 친구들이 조금만 뭐라고 하면 집에서 와서 울곤 했는데 이게 정상일까요?"


"미림이가 3학인 걸 생각하면... 정상 범위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계속 이런다면 걱정스럽겠습니다."


"미림이가 늦둥이라 그런지 저와 아빠가 너무 감싸서 그런 건 아닌지 걱정이에요."


"아이를 너무 감싸면 미림이처럼 예민하고 소극적인 아이로 자랄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은비랑 가까이 지내니까 좋아질 것 같은데요?"


"은비는 여자애치고는 조금 거친 아이 아닌가요? 미림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이 되던데요."


"은비는 미림이보다 직설적이고 주장이 강하지만 또 의리도 강해서 친구가 많습니다. 어제 일만 해도 은비가 친구들에게 미림이를 잡으라고 했을 때 친구들이 은비 말을 따른 것이 그 증거겠지요. 지금으로서는 성취욕구나 정체성, 자존감에서 은비가 앞서니까... 미림이가 은비의 성격을 조금 더 닮는다면 앞으로는 덜 울 것 같습니다. 사실 아이가 저학년 때에는 교사의 영향이 크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구들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그런 점에서 은비가 미림이에게 성장의 멘토 역할을 하게끔 옆에서 도와야겠네요. 은비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익입니다. 자칫하면 거칠고 직설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도 있을텐데 미림이처럼 여리고 예민한 친구와 사귀면서 자기 행동을 수정할 기회를 얻으니까요."




2020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아이들 접촉을 적극적으로 막아 다툼이 많이 줄었다. 다툼은 십중팔구 말로 시작하게 마련인데 아이들 입을 마스크가 막아서서다. 바이러스가 의도하지 않은 평화를 선물한 셈이다. 하지만 마스크에 억눌렸던 공격성은 언젠가 누군가를 향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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