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동안 글쓰기
내가 글쓰기 모임에서 주제를 발제할 차례가 왔다. 나도 모르게 시래기국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시래기국을 생각하면 여러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어수선한 그 감정들을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시래기국은 할머니의 시그니처 요리 중 하나였다.
할머니는 다른 집에서는 잘 안 먹는 이상한 요리를 잘 만들었다.
시래기국도 그중 한 가지였다.
시래기국이라는 요리가 우리 가족 밖에서 누군가에게 먹어지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할머니가 만들어낸 요리, 그래서 할머니 그 자체인 느낌.
다른 집 아이들이 소시지와 햄을 먹으며 클 때 나는 시래기국을 먹으며 컸다.
나는 그래서 가끔 외로웠던 것 같다.
엄마는 시래기국을 쓰레기국이라고 불렀다.
엄마가 나머지 가족들과 다른 단어를 쓰는 때가 있었다.
엄마가 시래기국을 쓰레기국으로, 계란을 겨란으로, 베개를 벼개로 부를때마다 엄마는 나와 한없이 멀어졌다.
엄마는 시어머니인 내 할머니와 소소하게, 그러나 오랫동안 불화했다.
나는 늘 할머니 편이었다.
할머니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할머니가 사용하는 단어를 음미했다.
그 이후에도 시래기국을 쓰레기국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살면서 몇 번 만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사람들과 안드로메다만큼 멀어졌다. 아니 멀어지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속이 좁은 걸 예민하다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시래기국은 나의 옹졸함을 보여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어리석고 둔한 나는 비로소 최근에야 세상에는 많은 버전의 시래기국이 있다는 걸, 그리고 시래기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 말고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시래기국을 쓰레기국으로 부르는 사람도 얼마든지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것도.
몇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오랫동안 우리 집 이층에 살던 아주머니가 조문을 오셨다.
나를 붙잡고 할머니와 무청 시래기를 주으러 농수산물 시장에 돌아다닌 이야기를 해주셨다.
시래기라는 게 말린 무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가 그 무청을 어디서 어떻게 공수해 오시는지는 몰랐다.
할머니는 농수산물 시장까지 한참을 걸어가셔서 상인들이 버린 무청을 얻어오셨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할머니가 하도 가자고 졸라서 같이 가신 것이지, 남이 버린 걸 주으러 돌아다니는 일이 별로 달갑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주머니를 뵙기 전까지 한참을 울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시장을 돌아다니며 무청을 줍고 있는 할머니가 어른거린다.
그리고 뒤에서 할머니를 불러보고 싶어진다.
할머니. 그만 줍고 집에 가자.
그러고 보니 우리 할머니, 담배값이 아깝다고 남이 피다 버린 꽁초도 자주 주워서 피셨었지.
쓰레기봉투가 아깝다고 쓰레기도 공원 화장실에 모아 몰래 버리셨고.
아. 지긋지긋한 경순씨.
할머니를 사랑하고 더 이해할수록 나는 할머니랑 같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외로워진다.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이제 홀로 이상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