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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샘 Jul 21. 2016

작고 웅장한 초록 미술관

2016.07. 제주 정원여행 - 생각하는 정원

이번 제주 여행은 대부분 중부 아니면 남부의 정원이나 숲을 돌아보려 했다. 대부분의 숲과 정원이 그쪽에 다 몰려있었다. 마침 여행지를 짜다가 몇 년 전 못 가봤던 곶자왈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하루쯤은 시간을 내서 곶자왈을 가보자고 생각했다. 곶자왈을 들르는 김에 제주도 서쪽에 있는 정원이 있나 찾아보았다. 찾다 보니 생각하는 정원이란 곳이 있길래 여기도 가봐야지 생각했다. 


정원 앞까지 버스를 타고 왔을 때만 해도 비는 오지 않거나, 거의 가랑비 수준이라 안심했는데... 표를 사는 순간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또 비옷과 레인커버를 끼고 들어갔다.  








이 정원은 그리 넓은 편은 아니다. 정원 둘레를 빽빽한 대나무숲이나 돌담 같은 것들이 막고 있었고, 군데군데 야자수나 소철 같은 것들이 조화되어 있었다. 폭포도 있는 것을 보면 조금은 일본정원 같기도 한데, 그만큼의 압축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



분재들은 길을 따라 양 옆 가까운 곳에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개인적으로 분재 취향은 아니지만, 그 작은 크기에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느낌은 제법 웅장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일본정원 느낌이 났지만,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일본정원 느낌보다는 미술관 느낌이 강했다. 



웅장한 느낌에 비해 크기는 꽤 앙증맞은 편이다. 여기 있던 분재 치고는 큰 편에 속했다.

 


분재들은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작은 분재들은 약간 좁게 모여 있기도 했고, 큰 분재들은 주변 배경 아래 홀로 놓여 있던 것도 있었다. 마치 미술관에서 작은 작품들이 모인 공간을 보다, 큰 작품이 있는 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 하나하나를 살폈다. 어떤 것은 크기에 맞게 잎도 앙증맞았고, 어떤 것은 작은 크기임에도 잎은 마치 제 크기의 나무들과 동일하게 커다랗게 자랐더라. 그렇게 길을 따라 나무를 하나하나 둘러볼수록, 빗줄기도 어느덧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역시나 제주인데 수국이 빠질 순 없지. 다른 곳과 달리 여기는 보라색이나 자주색 수국이 피어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짧게 걸렸다. 이대로 가기에는 아쉬워서 역주행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문득, 이 작은 나무에 많은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면, 이것들을 더욱더 웅장하게 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앙증맞은 분재들에게서 거대한 나무의 느낌을 받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많이 쪼그려 앉아서, 밑에서 분재들을 담아보았다.






때로는 최소초점거리 근처에서 잎의 일부만 담고 뒷부분에 보케를 맺히게끔 담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 그늘 아래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아예 나무 밑에서 구도를 잡았다. 35mm 렌즈로도 이런 느낌을 표현하기엔 충분하다 생각되지만, 21mm나 24mm 화각이 있었다면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더라. 


넌 비록 작지만 네 안에 담긴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고, 몸은 작더라도 네게서 펼쳐진 잎과 꽃과 열매는 원래 크기의 나무들과 똑같다고. 네게 담긴 그 시간만큼 너는 더 농축되고 더 웅장해질 거라고. 사진으로 그런 말들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분재정원이라고 설마 돌탑도 미니사이즈로 놓고 간 건 아니겠지



거꾸로 한 바퀴를 다시 돌고, 나는 정원을 나왔다. 








두 곳의 곶자왈 중, 생각하는 정원과 가까웠던 곶자왈환상숲을 보기로 했었다. 가는 길에 사진도 좀 찍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긴 일요일 오전에는 문을 닫는다. 어쩔 수 없이 곶자왈도립공원으로 향했다.  






입장료가 만원이나 하는 정원이다. 하지만 여태껏 둘러본 이런 비싼 정원들 치고 실망스러운 곳은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실망할 뻔했다. 공식 사이트나 검색 결과를 살펴보면, 정원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국빈방문에 대한 자랑 위주로 글들이 있길래 거의 기대도 안 했고. 분재원이란 것은 여행 전에 알고 갔긴 하지만, 정말로 분재만 있을 줄은 몰랐다. 막상 도착해서 천천히 분재들을 보고 있으니, 마치 이곳은 정원이라기보다는 미술관에 가까운 것 같았다. 정원 외곽의 약간 높고 빽빽한 나무나 벽들이 일본정원 느낌이 났다고 했는데, 보정하다 생각해 보니 이런 압축된 풍경도 분재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초록 미술관이더라. 


중간에 기념품점이 마치 에버랜드처럼 배치되어 있고, 전망대는 풍경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군데군데 막힌 길이 많았던 것은 다소 아쉽지만, 한 번 다시 들어가 본 덕에 약간은 생각이 새로고침 된 느낌이다.  







w_ A7R2, Loxia 2/35




LumaFonto Fotografio

빛나는 샘, 빛샘의 정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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