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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Feb 10. 2022

(Fly Me to the Moon) 1번.

2022.  (Moon) 1번: 간사한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0209)

제1화. 간사한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생각해보면 우린 참 아둔했다.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속이거나, 그래서 아무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참 쉬었다는 생각이 든다.      


  21세기의 중반 즈음, 어느 날. 오후.     


  『달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무한한 자원이 쌓여 있는 달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석탄과 석유에서 희토류, 코발트 리튬에 이르기까지 자원과 자본, 토지와 노동력을 둘러싼 갈등과 권력다툼은 인류의 역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은 투쟁의 산물입니다. 절대. 이번만큼은 동양의 변방에서 벗어나 인류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의 연설은 매번 감각적이고, 국민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낸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무명에 가까웠던 정치인이 지금은 우리의 미래를 이끌고 있다. 그는 단순히 정치인으로 불리진 않는다. 과학자이자 사업자, 자선가이며, 사교가였다. 하나같이 허무맹랑했던 그의 주장이 하나둘씩 현실로 실현되면서 그의 지인과 회사는 큰 이익을 남겼다. 이렇게 쌓은 자본력을 토대로 정당을 만들었고, 기존 정치와는 완벽하게 다른 새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치판에 뛰어든 뒤에도 그의 수많은 예견은 현실이 되었다. 아프리카가 중국을 능가하는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예견한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아프리카 경제연합이 설립되고 아프리카의 중국 의존도 탈피하여 독자적이고 자립화된 경제구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일찍부터 아프리카와의 경제교류를 준비했던 그는. 단박에 제1의 아프리카의 경제 파트너로 지목되었다. 그의 활약은 이뿐만이 아니다. 독도에 방파제 설립을 주도하면서, 동해상에 사상 최대 규모의 쓰나미에도 우리 국토를 안전히 지켜낼 수 있게 했고, 자신의 회사에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까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고작 마흔의 나이에 한 인간의 업적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커다란 성과였다. 그토록 오랜 기간 이어진 불황을 타파함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도 이제 진짜 선진국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그는 ‘코로나 혁명’ 이후에 등장한 구원자였고, 우리 미래의 희망이자, 현재의 행복이었다. 그 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98%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연하고 자연스레 우리의 대표자가 되었다.


  선 성장 후 분배는 6.25 전쟁 이후 한 번도 변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성장 기조임에 틀림없다. 달을 개발하자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정부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에게 앞으로 5년간 면세 해택을 준다고 했다. 기업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고 굴지의 대기업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했다. 자동차 제조회사는 달의 지하자원을 탐사하기 위한 무인 자동차와 드론을 만들고, 가전제품사에선 실시간 샘플 분석기를. 홈페이지와 이메일, 메신저로 성공한 테크 기업에서는 스스로 행동하고 판단 가능한 로봇을 만들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식료품, 음료 회사에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들의 식사를 담당했고, 콘텐츠 유통 대기업은 자사 쇼 프로그램을 통해서 ‘달 프로젝트’를 연일 홍보했다. 언론사도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옹호를 이어갔다. 그밖에도 속옷에 김치, 통조림과 화장품, 가구, 필기구까지 기업들의 러브콜은 끊이질 않았다.


  정부는 5년 안에 꼭, 달의 50% 이상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만들겠다면서 구체적인 추진전략을 밝혔다. 물론 표면적으로 드러난 목표나 전략보단 극비리에 진행되는 내용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계획을 발표한 시점엔 이미 목표의 절반 이상이 달성되어 있었고, 몇 달 뒤에나 공개될 수정 전략도 이미 여러 버전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이번에 발표한 내용은 대략 세 가지의 핵심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었는데, ‘달의 50% 이상을 대한민국 영토로’라는 비전 아래 1) 달 자원 ‘채굴 플랫폼’ 설치, 2) 달-지구 자원 수송 혁신, 3) 우주탐사 능력의 획기적 확대를 실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거창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나열하면서도 그는 마지막에 ‘경제 부흥’이라는 원초적 목적을 꼭 달성하겠노라고 힘주며 말했다.     


  “나랏 놈들이 하는 일들이 다 그렇지 뭐. 다들 화성에 간다고 난리 치는 이 마당에 고작 ‘달’이라니. 이미 69년에 미국이 해낸걸 우린 2000년 하고도 30년이나 더 지난 지금에서야 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 이거야”     


  “아냐 아냐. 잘 생각해봐. 다들 다른데 정신 팔려있을 때, 이때 달에 태극기 꽉 꽃아 버리면 오히려 우리한테 이득이라니까. 달에 광물이 어마어마하게 많다잖아. 국민연금도 못 받게 생겼는데, 저렇게라도 해서 돈 벌면 좋지 뭐”     


  여론은 두 부류로 갈렸다. 수십 년 동안 침체 중인 우리 경제를 확실하게 성장시킬 기회라는 쪽과 전 세계가 화성을 목표로 하는 시대에 하필 ‘달’을 목적으로 했냐는 질타가 엇갈렸다. 양쪽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도 그가 추진하는 정책이기에 ‘우주를 개척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정책은 마땅히 추진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달’이어야 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찬반만 있을 뿐, 비판이나 비난도 사뭇 예전과는 달랐다.


  처음엔 사람이 직접 달에 가려고 했다. 우주인 교육 체계조차 없는 우리나라에서 5년 안에 우주인을 육성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패권 경쟁이 치열한 요즈음. 러시아나 중국이나 혹은 미국같이 한쪽에 경쟁국에 위탁을 맡기기엔 고려해야 할 점이 너무 많았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 무인으로 가시죠”라고 결정했다. 그 이후부터 개념설계부터 싹 다 갈아엎고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 기술 확보를 위한 기획과 설계, 개발부터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한 설명회나 대국민 간담회에서도 직접 해당 사업을 설명했다. 사업 추진 3년 차에나 겨우 가능할 것 같았던 첫 번째 목표 ‘자원 채굴 플랫폼’ 설치가 2년도 채 되지 않아 목적을 조기 달성했다.

 

  우주선도, 장비를 운반하는 탐사선 석 대, 환경을 탐색하는 드론 10기와 타깃 지점에 드릴과 자원 선별 시설을 설치하는 자율로봇 넉 대가 하나의 그룹으로 구성된 로켓 두 대가 발사됐다. 앞서 이미 두 달 전에도 저궤도 위성 100기가 달 궤도를 돌며, 자원의 매장량을 스캔하면서 최종 후보지 2곳을 선정해 놨기 때문에 로켓 두 대는 각자의 타깃으로 향했다. 발사 시작 2시간 만에 달 궤도까지 닿았고, 30분 동안 달 궤도 두 바퀴를 돈 다음에야 착륙에 성공했다. 모든 과정이 인간의 개입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또 이런 장면을 모든 국민이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첫 번째 로켓이 착륙했고, 이어서 반대편에도 다른 또 하나의 로켓이 착륙했다. 착륙선 문이 열렸고, 바퀴가 6개 달린 탐사선에 상반신과 팔 네 개, 빠르게 회전하는 라이다가 달린 로봇이 긴 봉에 걸린 태극기를 흔들며 달 표면으로 내려왔다. 푹.


  『드디어 대한민국도 지구를 벗어나 또 다른 영토가 생겼음을 전 세계에 선언합니다』     


  그의 말에 아무개 국민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드디어 우리도 진정한 선진국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또 막대한 지하자원 확보의 기대감, 나아가 지긋지긋한 경제 침체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같이 비슷하면서도 오묘하게 다른 각가지 이유가 하나의 쾌감을 부르짖는 환호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달의 1/4이 우리 영토가 되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무인 로봇들은 달의 지하자원을 스캔함과 동시에 지하 2,000m 이상의 깊이로 ‘채굴 플랫폼’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달에서 또다시 재연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첫 번째 환호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두세 번째 환호가 이어졌다. 모두가 즐거워하고, 흥분하고 있었다. 어떤 중년의 남성은 웃통을 벗어 들고는 지나가던 무인차 천장에 올라타고 “대~한, 민! 국!”하고 소리쳤다. 장단을 맞추듯 손뼉 소리도 났다. 그 어떤 사람도 당시 순간의 환호를 뚫고 정부에 반대할 수 있었을까. 다음 날 거리는 여느 때처럼 무척이나 조용했지만 뉴스 프로그램은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전 국민이 웃었다’가 메인 카피였고, 우리도 이제 달이다. 같은 선언부터 외신이 찬사를 보냈다는 보도, 달 개척에 따르는 경제적 효과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무인 드론이 달에 착륙하고 만 하루 동안 확보한 데이터에 따르면 최소 수천조에서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정책 홍보성 기사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소리 죽여 또 한 번 ‘와’하며 환호했다.


  실질적인 문제는 두 번째 단계, 즉, 달에서 채취한 자원을 지구에 보내는 일부터였는데,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것은 세 번째 목표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우리보다 수십 년 빠르게 우주 개척을 시작한 초강대국들은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그런 와중에 우린 무인 로봇만 하늘로 쏘아 올렸으니, 유기체를 우주에 보낼 수 있는 능력은 검증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그럴듯해 보였던 그의 허울과 계획과 실행 전반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급하게 기자회견이 열렸다. 어제보다 회색 기운이 감도는 그의 낯빛이 영상에 잡히자마자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역시나 사과였다. 우리는 우주로 사람을 보낼 수 있는 자체적인 능력이 없음을 시인했다. 기계로 가득 찬 로켓을 달에 쏘아놓고, 마치, 삼사백 명을 거뜬히 태우고 화성을 왕복하는 외국 기업들과 동일한 경쟁력을 갖춘 것처럼 굴었던 점은 경솔했다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원색을 회복하던 그의 얼굴은 갑작스레 자신감으로 변해있었다.


  『무인 로봇이기 때문에, 그리고 화성처럼 멀리 있는 곳을 탐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회를 쥐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자신감을 드러내는 그의 태도는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방송을 송출하던 인공지능 알고리즘도 그의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웠는지, 줌인과 아웃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베토벤의 운명을 배경으로 깔았다가. 몇 초 후에나 안정을 찾았다. 모두를 놀라게 한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의 걱정, 조바심. 저 역시 이해하고 있습니다. 과연 가능할까. 우리가 시작한 위대한 한 걸음이 두 걸음으로, 또 세네 걸음으로, 결국엔 달려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금 사과를 드립니다. 하지만. 하. 지. 만!』     


  또 그가 격정적으로 변했다. 눈매가 날카로워졌고, 목소리가 커졌다.     


  『달은 이제 우리의 영토가 되었음은 전 세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또, 그곳에 존재하는 무한에 가까운 자원을 확인한 점도 사실입니다. 나아가. 달의 자원을 채취하고, 채취된 자원은 무인 드론에 실려 지구로. 우리나라로 내려오게 됩니다. 이 또한 사실입니다.』     


  그의 발표는 항상 20세기 말, 21세기 초반. 기업가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닮았다. 놀랍게, 더 놀라운 내용을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그렇다. 그와 기자 사이에 홀로포테이션(Holo-Portation), 그러니까 옛날 말로 가상 그래픽, 홀로그램이 박스 모양으로 그려졌다. 무심하게 그는 오른손을 뻗어 박스를 뜯어냈다.     


  『자. 보십시오. 이것이 순수한 우리 기술로 만든, 우리의 소중한 자원을 달에서 지구로 옮겨줄 ‘덤프 드론’입니다.』     


  태양열과 수소를 연료로 활용하는 이 드론은 1시간이면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지구로는 30분이면 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게다가 한 번에 10톤이 넘는 자원을 옮길 수도 있고, 전 세계 어디로든 배송 가능하다고 했다. 이로써 두 번째 계획상의 문제와 의구심의 세 번째 문제 또한 해결됐다. 매번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는 위기를 발판으로 삼아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위태위태하지만 다시금, 그렇게 우리의 간사한 불신은 확신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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