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그 고단함에 대해서

by 산에태양


50대 중반의 가장이 된다는 것은
세상이 주는 무게를 더는 나눌 곳 없이
온전히 자신의 어깨로 견디는 일이다.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부모가 놓친 그 모든 순간을 뒤로한 채
제각각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늘 ‘나중에 함께하자’고 미뤄두었던
그 몇 년 사이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 공백만큼,
나라는 존재의 자리는 회사에서 서서히 희미해진다.

젊은 날엔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전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생존’과 ‘자리’를 말없이 빼앗기는 나이대가 온다.

가장은 언제나 가족을 위해 먼저 희생한다.

자신의 취미, 건강, 욕망, 감정의 우선순위를
한 번도 1등으로 올려놓지 못한 채
늘 뒤로 밀어두는 생을 살아온다.
그러나 그 모든 헌신의 대가로
누군가가 알아주는 순간은 거의 오지 않는다.
몇몇은 살아남아 다시 자리를 잡지만,
대부분의 가장들은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왔구나”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낯설지만 피할 수 없는 곡선을 내려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 이막을 꿈꿔야 한다.”
하지만 이 말조차 어딘가 비현실적이다.
이막은 꿈이라기보다는
가파르게 낮아지는 현실 속에서
내려가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
스스로를 설득하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 가깝다.
인생의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한
길고 묵묵한 사투이다.

가장으로 산다는 것은 고단하다.
그 고단함은 피로와 스트레스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신 짊어줄 수 없고,
친구에게조차 선뜻 털어놓기 힘든
가장 내부의 가장 깊은 고독이 존재한다.
가족을 위해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나를 홀로 세워놓는 순간이 되는
이 모순 속에서
가장의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그러나 고단함 속에서도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무게가
남은 생을 가볍게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을 위한 한 줄의 틈이 생기지 않았을까.
견디고 버티며 살아온 세월이
마침내 나를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
늦은 시간의 문턱까지 데려온 건 아닐까.

그래서 가장의 이 고단함은

패배가 아니라 마침내 온 ‘진실’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결국,
견딘 자에게만 보이는 풍경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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