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장끼 속에 담긴 삶의 무게

by 산에태양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3년 동안 병원에 계시던 시절, 우리 집은 이미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었다.
병원비로 집안의 가산이 하나둘 사라질 때, 나는 겨우 중학교 2학년이었고 형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버스를 탈 돈조차 없던 날들이 일상이었고, 도시락을 싸가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평생 해보지 않았던 장사를 시작하셨다.

나이 겨우 30대 중반이었고, 가진 돈이라고는 28,300원뿐이었다.
하지만 그 돈은 어머니에게 단순한 자본이 아니라,
“두 아들을 어떻게든 먹이고 키워야 한다”는 절박한 다짐을 적어 넣은 마지막 씨앗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어머니의 장끼와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그 속에는 숫자와 매출 기록보다 더 많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익숙하지 않아 손해를 봤던 날의 자책,
장사가 안 돼 발걸음이 무거웠던 날의 고단함,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던 눈물과 고민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강해지자. 이 아이들만큼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어린 시절의 나는
한 번도 어머니의 슬픔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힘들다, 지친다,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않던 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늘 밝은 얼굴이었고,
새벽이 되면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을 나가셨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그 단단한 뒷모습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게 했던 힘.
그 힘의 뿌리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왔다.

이제 어머니는 어느덧 여든을 넘기셨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때 어머니가 버티셨던 모든 하루가
내 인생의 기둥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내 자식을 내 뜻대로 키울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날들도 있었지만,
결국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라
부모의 삶이 자식을 키운다는 걸
어머니를 보며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단지 우리를 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셨다.
그게 내가 평생 갚지 못할 빚이자,
그리고 가장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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