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유를 마주한 어느 날

by 산에태양

얼마 전 우연히 한 가족의 여행 영상을 보았다.

이른 나이에 퇴직을 하고, 온 가족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바닷가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매달 다른 나라의 공기와 풍경 속에서 삶을 꾸리는 그들의 일상이 스쳐갈 때, 나도 모르게 두 감정이 동시에 일어났다.
부럽다는 마음,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
그렇지만 사실 그 두 감정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숨 돌릴 틈 없이 일했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이라는 말은 어느새 너무 멀리 흘러가 버렸다.
성실하게, 책임 있게,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그 가족의 이야기는 나에게 묘한 충격을 남겼다.
모든 재산을 정리해 세계를 떠돌았고, 아이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라고 믿었다는 그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자기 삶의 방향을 또렷하게 그려가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삶의 선택은 결국 결과로 귀속된다는 것.
그 가족이 만약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아이들의 미래가 불안정했다면, 지금처럼 ‘멋진 이야기’로 포장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걸어온 길도 내가 원하는 대로 결실을 맺어 아이들이 성장했다면, 지금 이런 마음의 파문이 일어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 복잡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 같은 마음,
나는 왜 한 번도 틀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내가 내 아이들의 ‘꿈’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았던 적이 있었나 하는 자책.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하던 그 틀—좋은 학교, 안정된 직장, 집 한 채, 성실한 가장—
그 틀 속에서 나는 충실했지만,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아직 내 아이들은 인생의 1/5도 채 살지 않았다.
그들의 미래를 내가 대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결국 자기만의 답을 찾아갈 것이고, 그 답은 나와 다를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의 삶은 내 선택이 아닌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 남는 건,
내가 한 번쯤은 다른 삶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다.
틀에서 벗어난 아버지의 모습, 조금은 자유로운 어른의 얼굴,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태도 같은 것들.
그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이
요즘 따라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 삶도, 아이들의 삶도,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배우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이다.
나는 틀 안에서 성실히 살아왔고, 그 과정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늦었지만,
삶의 어딘가에서 작은 틈을 만들어
나만의 바람이 스며들 공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보여줄 또 다른 ‘가능성’은 지금이라도 만들 수 있다고,
그렇게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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