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있는 사람

by 산에태양

“내가 행복해야 주변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이 말은 너무 흔해서 가볍게 들리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문장이 유난히 무겁게 다가온다. 정말 그럴까? 아니, 어쩌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닐까.

가끔 이런 의문이 든다.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파할 수 있을까. 피곤함과 불만, 결핍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건네는 친절은 과연 온전한 것일까. 그것은 배려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 실은 의무나 책임에 가까운 건 아닐까.

우리는 흔히 ‘희생’을 미덕으로 배워왔다. 나를 조금 덜어내고, 가족을 위해 참으며, 주변을 위해 감정을 눌러두는 것이 성숙함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런 삶을 오래 살아보니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마음이 고갈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아무리 많은 것을 내어줘도 그 온기가 오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본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무언가를 해주고 나서 마음 한켠에서 본전이 생각난다면, 그것은 이미 조건이 붙은 나눔이다. 나중에 받을 보상에 대한 계산이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든, 언젠가는 돌아와야 한다는 기대든. 본전이 떠오르는 순간, 그 나눔은 순수함을 잃는다.

진실된 나눔은 계산이 없다.
하지만 계산이 없으려면 먼저 내 마음이 채워져 있어야 한다. 내가 이미 충분히 행복할 때, 비로소 나눔은 가벼워진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되고,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으며, 돌려받지 않아도 마음이 줄어들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내가 조건 없이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서, 성과를 내서, 역할을 다해서 얻는 행복이 아니라, 그냥 ‘나로서 괜찮다’는 상태에 도달했느냐는 질문이다. 그 지점에 서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행복을 빌미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기대하게 되고, 실망하게 되고, 상처받게 된다.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은 이기적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를 채우지 못한 사람이 주변을 채우겠다는 것은 무리한 약속에 가깝다. 스스로 숨이 가쁜 사람이 타인의 숨결을 돌볼 수는 없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행복은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라고. 내가 편안해질 때,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판단이 느슨해지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여백이 생긴다. 그 여백이야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진짜 행복일지도 모른다.

내가 행복해야, 주변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이 문장은 다짐이 아니라 책임이다. 나 자신을 먼저 돌보겠다는 책임, 조건 없이 나를 허락하겠다는 책임. 그리고 그 책임을 다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누군가의 삶에 조용히 따뜻해질 자격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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