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있었던 일 총정리
24년-25년은 나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던 한 해였다. 미국이 가을학기부터 시작하니까, 나에게는 사실상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른 오늘이 한 해의 끝처럼 느껴진다. 인턴을 위해 여름에 캘리포니아로 떠나기에 앞서,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여기 몇 자 정리해보고자 한다. (2025년 5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그토록 가고 싶던 미국으로 하고 싶던 공부를 하러 가는 기분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다. 책임감의 무게는 어른이 된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외롭기도 했다. 친구들은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내게 진짜로 소중한 사람들을 추려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나의 선택을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또 응원해 주는 따뜻한 반응들 덕분에 내가 한 뼘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어도, 전공 지식도, 미국에 대한 이해도 그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는 나에게 불안을 가져다줬지만, 언제는 내가 완벽한 상태에서 도전을 했었냐며 그렇게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 번의 경유를 걸쳐 도착한 도시는 낯설었지만, 공항에서부터 숙소로 가는 길에 만났던 친절한 우버 기사 아주머니, OT에서 우연히 옆에 앉았던 같은 프로그램 듣는 친구들, 첫 대화부터 너무나 격의 없고 편하게 해 주셨던 학과장님, 학교와 도시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던 룸메, 국제학생 OT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국인 친구들. 그 모든 우연들과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점차 자신감을 찾아갔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어렵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하기 직전의 감정일 뿐이라는 걸 배웠다. 막상 시작하고 나면 나는 또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몸소 겪고서야 알게 됐다.
첫 학기는 굉장히 버거웠다. 이게 맞나...? 하면서 한 걸음씩 걸어 나갔던 시간이었다. 버거웠던 이유는, 내가 나에게 주고 있던 부담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잘하고 싶었다. 내가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나는 평생 건드려본 적도 없는 학문을 석사생 수준에서 따라잡아야 했다. 과제는 쏟아져내렸고, 나는 영어 강의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그 강의를 돌려보느라 2배, 3배의 시간을 써야 했다. 한 수업은 과제하면서 울음이 터질 정도로 너무 어렵다고 느껴졌다. 근데 그 감정은 오피스아워에 가서 나처럼 똑같이 어려워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해소할 수 있었다. '이걸 이해 못 하는 내가 바보인가'하는 생각이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여름 인턴을 구하기 위한 구직 활동도 시작했는데, 지금 막 배우는 입장에서 벌써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현실 또한 녹록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기업들이 학교로 직접 와서 리크루팅을 하는 Career Fair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기업 담당자에게 짧은 시간 내에 나를 소개하는 elevator pitch도 연습하고, 코딩 연습도 매일 루틴의 일부로 열심히 하고, 틈틈이 이력서 첨삭을 받으러 Career Service Center도 찾아가고, 주로 수업이 끝난 뒤 저녁 시간에 있는 기업 설명회도 빠지지 않고 가서 정보를 얻으려고 발로 뛰었다. 거기서 또 자기소개를 하면서 LinkedIn으로 커넥트 하는 등 추가적인 노력이 또 필요했다. 여기 와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이 그 과정에서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인턴은 어디서 구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내가 알지 못했던 정말 구체적인 것들에 대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정보를 냅다 퍼주는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끊임없는 rejection메일에도 멘탈을 부여잡으며, '그냥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며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을 때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의심이 시시때때로 솟구쳐 올라왔지만, 그냥 그 프로세스를 믿을 수밖에. 동굴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막상 나오고 보면 '아, 저기서 진짜 한 발짝만 더 오면 여기였구나'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다행히 지원했던 기업들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Online Assessment(OA)를 여러 개 보고, Phone Screening부터 Case interview도 보았다. 학교 수업 따라가랴, 인터뷰 보랴, 정신이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스터디룸 하나 빌려서 인터뷰를 보다가, 뛰어서 수업에 가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아직 글로 풀어내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풀어낼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에 룸메이트들 간의 갈등이 굉장히 심화되기도 했다. 나는 총 2명의 룸메이트와 생활했는데, 한 명은 분노조절문제, 한 명은 소음조절문제로 내가 살면서 처음 본 강도의 갈등을 매일 같이 이어나갔다. 그 사이에서 나는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되었다. 그 와중에 긍정적인 점을 찾으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거의 도서관에서 강제로 살다시피 할 수 있었다는 거.
겨울방학 시작과 동시에 나는 굉장히 가고 싶던 회사 중 하나인 퀀트회사에서 총 3단계에 걸친 인터뷰를 통과하고 마지막 온사이트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다. 그때 굉장한 기대감에 차 있었던 것 같다. 이제까지 최종면접에 가서 떨어진 적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계속 기대감을 걸고 되뇌고 있었나 보다. '분명히 될 거야'. 뉴욕에서 일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인터뷰 보고 난 2일 뒤, 나는 탈락 메일을 받았다. 그 좌절감이란. 눈물 젖은 베개와 함께, '한 학기 열심히 했다. 조금만 쉬자.' 그 겨울은 정말 우울했지만, 스스로에게 '아니야, 괜찮아. 좋은 경험들 많이 했잖아'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도 익힐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생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을 테고 항상 변화를 마주할 테지만, 그 속에서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들어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단단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겨울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쯤이었을까, 이전 학기에는 연락도 없던 빅테크 기업 무려 세 군데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 메일들은 얕은 좌절감에 조금씩 묻혀가고 있던 나를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다시 최선을 다해 인터뷰 연습에 돌입했다. 새로 오픈한 공대건물 스터디룸에 살다시피 하면서 매일같이 소리 내어 칠판에 문제를 풀고, 또 풀고, 또 연습했다. 그 결과 2월 첫째 주, 나는 극적으로 여름 인턴 합격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봄 학기의 판도는 완전히 뒤집혔다.
이 시기에 나에게 좌절과 희망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기회가 언제 나에게 던져질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그저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준비만 돼있으면 되는 거였다. '드디어 인턴 서칭을 좀 접어두고, 학교 수업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이번 학기에 들었던 수업들은 너무나 흥미로웠고, 첫 학기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내가 그토록 집중하고 싶었던 반 친구들과, 교수님들과의 관계 형성에 집중했다. 오피스 아워를 열심히 찾아가며 교수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수업시간에 배우는 것 이상의 깊은 지식을 구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교수님들을 항상 어려워하고는 했는데, 이제는 너무나도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좋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더 많아졌다. 특히 MBA졸업을 앞둔 한 친구와 급격히 친해졌다. 가치관도, 성향도 너무 잘 맞았고 굉장히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찾게 되었다. 물론 아직 한국어로 나눌 수 있는 모든 얘기를 영어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각자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별별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참 신기하면서도 감사한 부분이다.
일 년의 석사 과정이 끝나고, 나는 곧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별별 스토리가 묻어있는 그간 살던 집과 캠퍼스를 떠나, 미국에서 처음으로 일을 해보러 간다. 몇 번 놀러만 갔던 도시인데, 일하는 입장으로 다시 그 동네를 간다니 감회가 매우 새롭다. 5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을까. 정확히는 미국에 온 지 8개월 조금 넘은 시점인데, 나에게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자극이었고, 내 한계를 시험하는 나날들이었다. 여전히 배울 것은 많지만, 내가 이렇게 성장의 여지가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게 즐겁다. 이곳에서의 일상도 익숙해지지 않게, 항상 감사할 점을 찾으며 살아가야지, 그렇게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