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어느 순간에서든 Best Friend를 만날 수 있다
나는 태생이 내향적인 사람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복도를 지나가다가 친구가 인사 안 해주면 '나를 싫어하나?' 하면서 혼자 상처받고, 뭐 그런 정도의 소심이었기도 하다. 대학생 시절을 지나 일을 하면서 학습된 외향성을 갖추게 되었지만, 집에 오면 표정이 싹 굳으면서 무표정으로 뒹굴거리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건, 나의 인간관계가 회사 사람들 & 기존에 알던 친구들로 제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나면 회사 동기들과 가볍게 술 한잔을 기울이는 게 내 생활 반경의 전부였고 그마저도 연차가 쌓이면서 힘들다는 이유로 점차 줄어들었다. 그때쯤 생존을 위한 운동에 더 시간을 쏟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나는 점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생 때 만났던 친구들, 회사 동기들은 주기적으로 보는 친한 사이였지만 다들 현생에 치여 그마저도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직하면서 늘어난 야근으로 인해 나의 평일 자유시간은 완전히 날아갔고, 그나마 있는 주말은 피곤해서 부족한 잠을 채우느라 혹은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다 써버리기 일쑤였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디서 어떻게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이미 있는 친구관계를 유지하기에도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으니 말이다.
나의 고맙고도 소중한 친구들을 뒤로하고 유학을 나왔을 때 큰 걱정이 바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였다. 물론 친구를 사귀러 유학을 나온 건 아니지만, 외로운 유학생활에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친구 몇 명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유학을 나온 시점에는 이미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너무 오래됐던 나머지, 나는 '친구 사귀는 거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하는 상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새로운 친구는 얼마든지 사귈 수 있다. 오히려 기회가 더 많다고 느낀다. 물론 내가 얼마나 열려있는지에 따라. 나는 직장인에서 다시 학생으로 돌아온 것의 가장 큰 메리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꽤나 쉽게 열린다는 거. 그리고 이렇게 사귄 친구는 유학 생활에서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정말 큰 힘이 된다.
학교, 단과대, 동아리 등등 미국 학교에서는 학생들 대상으로 많은 이벤트를 연다.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이런 기회가 더 많다고 느꼈다. 새해, 할로윈, 봄 Gala, 크루즈 이벤트, 대학원생들 대상으로 하는 Bar Crawl 등등 크고 작은 이벤트를 통해 서로 다른 단과대 사람들끼리의 교류의 장을 열어준다. 이런 이벤트는 대부분 소액 ~ 무료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낸 등록금에 녹아있다 생각하고 가면 된다. 항상 같은 과 친구들이랑만 지내다가 한 번씩은 이런 자리에서 다른 전공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는 좋은 기회이다. 나의 경우, 나는 첫 학기 때 참가했던 해커톤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급격히 빠르게 친해졌었다. 그중 한 친구는 우연히도 나랑 같은 건물에 살았는데, 내가 여름방학 기간에 베이 지역에 간 동안 내 짐을 고맙게도 자신의 집에 맡아주었다. 덕분에 추가 창고 비용이나 운송 비용 걱정 없이 짐을 맡겨놓을 수 있었다. 이사가 정말 큰 스트레스였는데, 이 친구 덕에 정말 쉽게 해결했던 기억이 있다. 우연하게 친해진 친구가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큰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유학 나와서 가장 큰 힘이 된 한국인 친구들이 있다. 다들 유학생이었고, 입학한 주에 있었던 국제학생 OT에서 그 친구들을 처음 만났다. 그 자리에 우리 과의 다른 국제학생 친구들과 갔는데, 저 멀리 테이블에 한 6명 정도 딱 봐도 한국인처럼 보이는 (한국인은 무조건 한국인을 알아본다!!!) 사람들이 서있는 거다. 그래서 용기 내어 다가가서 물었다. "혹시 한국인이신가요..?"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그중 2명의 친구가 나와 같은 컴퓨터공학 전공인 걸 알게 되었다. 그 길로 다양한 인생의 궤적을 서로 나누며 (OT는 뒷전이었다) 오티가 끝난 후 함께 한국 치킨집에 가서 식사를 하며 더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단톡방에 서로 해커톤, 취업 준비 정보, 이벤트, 커리어 페어, 세미나, 수강하는 수업 등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며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최강 F인 내가 취업 준비하다가 가끔 멘탈이 흔들려 눈물이 터질 것 같을 때에도, 그 멘탈을 엄청난 T력으로 같이 붙들어 준 친구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가깝게 지내고, 이곳에서 만난 새로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지가 되는 친구들이다. 참 감사하다.
인터넷이나 카톡에 학교 이름 + KGSA라고 치면 (Korean Graduate Student Association) 한인 대학원생 학생회들의 오픈 채팅방이나 페이스북 페이지가 나올 텐데, 여기서도 신입생 환영회부터 다른 학교와의 Mixer 등등 감사하게도 많은 이벤트를 주최해 주신다. 우리 학교 학생회에서도 매년 신입생 환영회를 열고 있고, 이 자리에서 많은 석박사생분들을 만남과 동시에 동아리나 지역 맛집, 지역생활 관련된 꿀팁 등 생활 전반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합격 직후에 해커스 유학 페이지를 통해 우리 학교 신입생 단톡방 링크를 얻을 수 있었고, 이 채팅방을 통해 내가 미처 알 수 없었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살기 안전한 지역, 주로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아파트, 입학 전 예방접종 제출 관련 정보, 보험 관련 정보 등등 다양한 행정적인 부분에서 특히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건 좀 더 외향력(?)이 필요하긴 한데, 학생들끼리도 많은 이벤트를 주최한다. 우리 학과의 경우에는 따로 운영 위원회를 두고 있고, 그 친구들이 거의 매달 자율적으로 이벤트를 기획한다. 나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8월에는 워싱턴D.C.에 가는 여행이 있었고, 10월에는 할로윈 파티, 11월에는 1시간 떨어진 근교로의 Apple Picking 이벤트 등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서 2베드에 사는 친구가 꼭 매년 자신의 집에서 홈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런 이벤트는 BYOB (Bring Your Own Beer - 네가 마실 술은 네가 들고 오시오) 형태가 대부분인데, 캐주얼하게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좋다.
이 외에도 세미나를 들으러 갔다가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친해지기도 하고, 같은 수업을 듣다가 오며 가며 마주치다 친해지기도 한다. 성인이 된 이후의 우정에는 분명히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금방 친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사실 유학 나와서 내 공부를 하고 내 목표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우선순위겠지만, 그 과정이 너무 외로우면 잘 견디기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하고, 이 힘들고 외로울 수 있는 길을 함께 헤쳐나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대학원인 만큼 사람들의 연령대도 굉장히 다양하고, 더욱이 외국 친구들은 나이를 딱히 안 물어본다. 그냥 친구면 친구인 거다. 그래서 오히려 친구 사귀는 게 걱정했던 것만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새로운 지역에 적응할 때 나만의 지지대를 만드는 건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중 가장 강력한 지지대가 바로 사람이다. 나 혼자 제아무리 엄청 인터넷을 뒤지고 리서치를 해봤자,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훨씬 유용하고 직접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때가 많았다. 또한 정서적으로도 많은 힘이 되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고민과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첫 학기 때는 이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년 하고도 두 달이 더 지난 시점에 돌아봤을 때, 나의 지지대를 넓혀놓은 것이 지금 내가 이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