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량이 만렙인 게 확실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매일같이 질주하는 5살과 폭주하는 2살을 보며 한 이웃주민은 말하기도 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해서 엄마가 제일 힘들어 보여요. 아이들이 딱 힘들 나이예요.”
가실 줄 모르는 더위만큼이나 내 마음에도 여러 감정이 들끓었다. 육아,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거기다 워킹맘,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에서도 여러 일이 빵빵 터졌다. 그 모든 상황과 감정을 덮어두고 떠난 여름휴가였다.
가난한 생활 중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학문과 도를 즐겨 지키다.
8월의 마지막 주, 영주의 도로 곳곳에는 안빈낙도가 적힌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뜻을 풀이하면 가난한 와중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겁게 행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 생긴 지역답게 선비정신을 테마로 도시가 브랜딩 되고 행사가 기획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영주가 주는 인상은 여행 내내 점잖고 고요했다. 요란하고 분주한 내 삶과는 전혀 다른 속도와 방향의 장소에서 나는 무엇을 얻게 될까.
내리 3시간을 달려 도착한 당일, 피로가 몰려오기는 했지만 숙소에만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어떻게든 나가서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걸 보면 아이들의 활동성의 DNA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유모차에 두 아이를 태워 영주의 주요 관광지를 돌았다. 다행히도 배리어프리가 잘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데도 그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고, 이어서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곳인 선비촌에 이르러서는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에 의아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선비의 이미지는 곧은 갓에 식솔을 여럿 거느린 양반이었다. 잘못 연상된 이미지였다. 실제 선비들은 청빈한 정신으로 학문에 대한 신념을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이어서 선비촌으로 넘어갔다. 으리으리한 기와집 말고도 소박한 초가집이 여럿 있었다. 허리를 최대한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좁은 방 안에서 선비의 삶을 짐작해 보았다. 사람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선비들이 주경야독하며 살았듯 나 또한 아이들을 재우고 남은 회사 일을 쳐내거나 못다 한 독서나 글을 쓴다. 시대를 초월해 먹고살 것을 걱정하고, 변화하는 계절을 느끼며, 점점 쇠하는 몸의 기능들을 실감하는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다만 다른 점은 정신일 것이다.
안빈낙도에 대해 나는 여행 내내 되뇌었다. 가난한데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가. 무엇하러 즐거이 도를 지키는가. 안빈낙도를 기꺼이 실천하는 선비들의 명분과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선비의 가난'은 나에게 '아들 둘 워킹맘의 비애'로 치환되었다. 가난하면 불편한 것들이 있다. 배를 곯고 더위와 추위를 좀 더 극적으로 느낀다. 욕망이 좌절된다. 그러나 그뿐이다. 활동성 만렙인 아이들이 있으면 체력이 쉬이 고갈된다. 육아와 일을 하려면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야 한다. 버겁긴 하나 그뿐이다.
안빈낙도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찾을 수 있을까.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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