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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낙도'할 것

by 윤지영

1편을 보고 오시면 좋습니다. (https://brunch.co.kr/@noowhy/234)



해질 무렵 만난 전원 풍경. 여행 내내 사람하나 없는 이런 풍경을 자주 목도했다.



이모부 따라 캠핑을 간 적이 있다. 적당히 흐려 놀기 딱 좋은 날씨였다. 계곡에서 사촌들과 신명 나게 물놀이를 하고 불법인걸 알면서도 서리도 해봤다. 잘생긴 또래 친구를 만나 싸이월드 일촌을 맺었던 기억도 난다. 첩첩산중에서 이리도 재밌을 수가! 그 모든 것은 평소에 책만 읽던 일상과 동떨어진 일이어서 아주 천진한 기쁨을 주었다.


문제는 밤이었다. 비가 대차게 쏟아졌다. 요새라면 재난문자가 연거푸 울릴 정도의 폭우였다고 짐작해 본다. 우리는 비를 피해 텐트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텐트마저 뚫린 건지 바닥이 빗물로 흥건해졌다. 낮에는 휴양객이었는데 반나절만에 이재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설상가상 텐트는 계곡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얼기설기 쳐져 있었다. 계곡물이 불어나면 떠내려갈 것 같았다. 무서웠다.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집에 갈래요."


내 기억에 항상 취해 있었던 이모부는 그날도 어김없이 취해있었다.


"우리는 여기 있을 거야. 집에 가고 싶으면 너 혼자 걸어서 가."


참나! 우리의 유일한 보호자면서! 속으로 뭐 저런 어른이 다 있냐고 욕을 궁시렁궁시렁 했다. 물에 떠내려가 죽든지 산 속에서 헤매다 죽든지 둘다 경중을 따질 수 없이 위험해보였다. 나는 혹여나 죽는다면, 그나마 수동적인 죽음을 택하기로 했다. 얼마나 깊은지 알수도 없는 산 속에서 헤매다 죽는 건 더 싫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최대한 빨리 잠드는 것 뿐. 나는 축축한 바닥에 수건을 덧대어 깔면서 빨리 잠이 들기를 바랬다. 천둥번개가 치고 물살 소리가 불어날 때마다 공포스러웠지만 어떻게든 자기 최면을 걸며 잠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해져 있었다. 텐트 바닥은 아직 축축했지만 우리는 떠내려가지 않았고 잠도 잘 잤다. 이모부는 애진작에 일어나 컵라면을 먹으며 해장을 하고 있었다. 2000년대였고, 모든 어린이가 강하게 크던 시절이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걸 가장 극적으로 경험한 하룻밤이었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면 가끔씩 그때를 떠올린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출장 간 남편 대신 기꺼이 여행에 동행해 준 내 동생은 세 번째 날 아침에 눈을 떠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 아직도 여행이 더 남았네..."


동생과 예견하긴 했었다. 여행보다는 고행 쪽이 될 거라고. 정말 일정마다 모든 순간이 그랬지만... 그 지난한 일들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고... 아무튼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영주 최고의 관광 아웃풋인 부석사를 갈 껀지 말껀지를 여러 날 고민했다. 올라가는 길이 꽤 멀고 유모차로 가기는 쉽지 않다는 후기를 읽었지만, 결국 요행보다는 고행을 택하기로 했다. 그때 그 텐트에 동생도 있었다. 강하게 큰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면 응당 할 법한 선택이었다.



영주 인삼박물관, 무료인데 너무 고퀄리티여서 오전 내내 뽕 뽑았다. 영유아와 함께하는 가족여행이라면 필수코스!
인삼밭에 자기 다리를 기어코 집어넣고 구해달라 소리치는 둘째와 그의 구원자 첫째
뽑아주면 다시 심고, 뽑아주면 다시 심고… 알고 싶다 너의 마음.



낮잠도 충분히 재우고 배도 빵빵하게 채우는 등 나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부석사 후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인삼박물관에서 만난 직원분께서 여기로 가면 곧바로 부석사로 진입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62) 아이와 동행하는 여행에서는 은인들을 여럿 만난다. 더운 날에 물과 부채를 기꺼이 내어주고, 식당의 난장판을 눈감아주며, 관광지까지 등반할 수고를 덜어주는 고마운 어른들 덕분에 때마다 한시름 놓았다.



고요한 첩첩산중에 대한민국 10대 사찰이자 국가유산인 부석사가 있다. 여기 정말 멋있다고 들었는데 안 왔으면 후회할 뻔.
무려 신라시대 때 지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범종각. 자연과 어우러지면서도 위용이 넘친다.
쌩쌩하게 부석사 곳곳을 돌아보았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놀이터에서 놀면서 단련시킨 체력은 이때 위력을 발휘했다.



여행지에 절이 있다면 부러 찾아가 보는 편이다. 깊은 산속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절에는 대게 적막이 감돈다. 적막함은 현대인이 가장 찾기 힘든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북적북적한 서울에서 파워 외향인으로 태어나 늘상 인간관계 주류에 속해있는 나는 더더욱 알 수 없는 감정이다. 게다가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온종일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들이 부석사에서는 어떤 에티튜드를 감지했는지 절에 입성하자 소곤소곤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약수터에서 헤엄치겠다고 약간 소동을 벌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영주에 와서 처음으로 이 곳의 정취를 느껴보았다. 소란 없는 찰나의 시간이 선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윽고 저 너머 풍경을 보는데,





푸르게 뒤덮인 소백산맥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져있었다. 고속도로를 타며 간간히 보던 산과, 마을 경로당에 앉아서 보는 작은 산들도 마음을 개운하게 해 주었는데 이건 정말 압도적이었다.


서른 중반에 다다르니 알게 된 이치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태어나고 그래서 어떤 인생도 같지 않다는 걸. 내가 두 아이를 낳고 도시에서 살아가길 선택했듯이 세월을 거슬러 아주 오래전 누군가는 속세와 연을 끊고 이 풍경을 보며 살아가기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인생을 선택했지만 우리의 인생은 크게 다를 바 없이 고행길일 거라는 걸 안다. 땀흘리고 수고하는 와중에 간혹 위로가 되는 풍경과 장면을 반드시 선물로 받을 거란 걸. 거기서 잠시 위안을 얻은 뒤 다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 절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소백산맥을 보며 떠올렸다. 대자연이 주는 경외와 적막이 주는 통찰이었다.

과거 섬마을을 유일하게 이어주던 외나무다리를 찾았다. 아이가 자기 앞에 놓인 길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간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무섬마을에 갔다. 현재는 수도교가 생겼지만 과거에는 이 외나무다리가 마을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고 한다. 큰아들은 나처럼 도시에서 나고 자란 본투비 씨티보이다. 외나무다리를 건너고는 싶은데 거기까지 가려면 모래사장을 거쳐야 했다. 슬리퍼 사이로 들어오는 까슬까슬한 모래가 불편하고 싫어서 자꾸 안기려고 했다. 나는 안아주지 않는 대신에 말했다.


"모래가 들어와서 불편하지? 모래길은 원래 그런 거야. 도착해서 털면 돼."


아이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생짜증을 냈다. 걸음마다 징징거렸다. 그런데도 엄마가 안아주지 않으니까 결국 포기하고 묵묵히(혹은 삐져서) 자기 몫을 걸었다. 속으로 뭐 이런 엄마가 다 있냐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들, 너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너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털고 털어도 자꾸 새어 들어오는 모래. 실시간으로 강해지는 중.



종국에 아이는 태연하게 발을 털고 코스를 완주했다. 그리고 저녁을 왕창 먹고 뻗었다. 잠든 아이를 끌어안아보았다. 분명 아이는 자기가 걸은 모래걸음만큼 강해졌을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일주일이 되어간다. 안빈낙도가 던진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것 같다. 일단은 즐겨보기로 했다. 속수무책으로 일이 쌓이는 회사와 지치지 않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손을 좀 보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시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4일은 8시간 이상 잠을 자고 체력을 지키기 위해 틈새 시간에 운동하기로 다짐했다. 그게 내가 선택한 지금의 안빈낙도다. 두 아이를 들쳐 매고 낯선 도시에서의 3박 4일, 나도 한 뼘 더 강해진 것 같다.



#영주여행 #일주일살아보기 #영주가볼만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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