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말이 칼이 될 때>

어른들아, 친구 좀 사귀자

by 꽃고래

<서평>


제목부터 섬뜩하다. 칼은 손이 아니라 입에 쥐어졌다. 우리는 언제든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칼을 입에, 아니 머릿속에 지니고 산다. 학교라는 현장, 노동 현자, 그리고 인터넷 아무 뉴스나 게시글을 클릭해도 칼보다 날카롭고 공격적인 혐오 표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인 저자 홍성수는 혐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며 2013년 일베 커뮤니티 놀이를 지적하며 이러한 온라인 문화가 실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매우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어쩌면 진보나 보수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저자는 민주화 시기에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려고 노력했던 쪽이 진보였지만, 일베나 여혐 관련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자고 목소리 높인 쪽이 이제 진보 진영이라고 하였다. 자유로운 표현이 넘치다 못해 윤리적, 상식적 기준을 무시하고 있는 시대에는 규제와 제한과 법령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혐오표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전적 의미로 혐오는 매우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다. 한국어에서 혐오는 ‘혐오시설’, ‘혐오식품’처럼 시설이나 음식을 수식하는 말로 주로 쓰여왔다. 혐오표현은 ‘헤이트 스피치’를 번역한 말인데, 영어에서 ’헤이트‘도 극도의 싦음, 역겨움, 적대감을 뜻한다. 헤이트나 혐오 모두 상당히 강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혐오표현에서의 혐오는 이러한 일상적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여기서 혐오는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24p)”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면 아마 쉽게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장애인, 소수자, 노인, 여혐, 남혐 등 우리는 언제나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은연 중에 혐오의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캐나다에 공부하러 온 지 이제 1년이 되었다. 빠르게 합법적 이민 정책을 펼친 캐나다는 이제 국민들의 불만과 원성을 고려하여 강력한 정책으로 이민의 문을 닫고 있다. 집값이 오르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내 것을 빼앗는 것만 같은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인도 사람이 많다고 불평한다. 중국 사람이 집을 다 샀다고 싫어한다. 은근한 차별의 발언이 일상 속에, sns에 존재한다.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장점이었던 캐나다 국민들은 마음 속 장벽을 세우고 있었다. 며칠 전인가 나 또한 아이들에게 몇 번을 지적당했다. 헤어스타일이 좀 뒤죽박죽이고 정돈이 안 된 학교 학생이 보이길래 나는 차에서 가볍게 내뱉었다.

“쟤는 누구야? 새로 학교에 들어온 친구인가? 머리 스타일을 보니… 중국인이지?”

아이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쟤는 한국인이야. 그런 선입견은 버려. 그리고 제발 한국말로 크게 말하지 마. 다 알아듣겠어.”


이뿐만이 아니다. 서브웨이에 샌드위치를 사서 나오며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참 이상해. 왜 이 샌드위치에서 마살라 맛이 나는 것 같지? 직원들이 전부 인도 사람이라 그런가?”

아이들은 또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 엄마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김치맛이 난다고 하면 좋겠어?”

나는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 누군가를 이렇게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고 함부로 말하는 습성이 있었다니. 나름 공부도 하고 다양한 책도 읽으며 꽤 열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봤을 때는 그저 날카로운 칼을 입에 문 편협한 어른일 뿐이라니. 저자는 일상적 혐오와 차별의 표현들이 언제든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수년이 흐른 후 그것들은 실제 폭력과 갈등이 되었음을 우리는 목격했다.

IMG_1362.jpeg 캐나다 원주민(Indigenous) 아동들과 관련된 역사적 상처와 치유 운동을 상징하는 구호. 화해(Reconciliation)와 기억(Remembrance)의 오렌지 셔츠 데이.

딸들, 아들들의 학교 절친 중에는 중국, 캐나다, 홍콩, 유럽, 아프가니스탄부터 우간다까지 국적이 다양하다. 물론 어떤 중국인 친구의 깊은 중화사상으로 아들들이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들은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차이나 아웃”을 외치는 혐중 집회를 지켜보며 대한민국 한 고등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에 나가서 사는 사람이 많지 않나요?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이나 아웃'이라고 외치는 게 이해가 안돼요. (중국 동포) 친구들과 너무도 두루두루 잘 지내요.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차별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더 알려주는 편이구요. 어른들이 문제인 것 같아요." - 우아무개(17·여성·한국)씨 (출처: 오마이뉴스, <대림동 고등학생의 의문>, 2025.09.6. 오마이뉴스>

맞다, 어른들이 문제다. 어른들아, 우리 입에 문 칼을 내려놓자. 친구를 사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