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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Feb 07. 2021

가재도 키우는데

조건없는 사랑

 애완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허락한 유일한 생물체는 ‘가재’였다. 사실 그동안 애절한 아이들의 눈빛을 쭉 외면해왔다. 아이들은 길고양이를 보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친구네 강아지를 보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할머니 댁에 가면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고 늘 말하곤 했다. 네 명의 인간을 키우고, 한 명의 장성한 인간을 돌보는 일도 벅찬 내게 강아지는 또 다른 돌봄의 대상일 뿐. 그 귀여운 얼굴은 그냥 멀찍이 바라만 보아도 충분히 만족했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블루가재를 키우고 있었다. 아들들은 그 집에 다녀오면 가재에 대해 즐거운 설명을 했다. 왜 녀석들은 다른 생명을 그토록 돌보고 싶어 할까? 아니, 동생들이나 잘 볼 것이지. 물고기 한 마리 키우는데도 커다란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겨우 아이들이 스스로 이를 닦고 밥을 먹게 되었는데 말이다. 난 일감을 늘리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가재를 키운다면 온전히 아들들의 몫이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당연하지! 우리가 다 할 거야.”

아들 둘은 도원결의라도 하듯이 비장하고 굳건하게 내 앞에서 약속을 하였다. 그렇게 신나게 친구네 집에서 분양을 받아왔다. 팔 하나가 없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가재를 데리고 온 것이다. 좀 짠했다. 귀여웠다.

‘아니야 마음 단단히 먹어. 벌써 가재 한 마리에 정을 줄 작정이야?’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관심을 두다간 나도 모르게 가재를 돌보게 될 수도 있었다.


“다 크면 랍스터로 구워 먹어야겠다!”

깔깔깔 웃는 엄마의 잔인한 농담에 아들들은 진저리 치며 정말 정성껏 가재를 돌보았다. 쌍둥이 아들 둘은 돌아가면서 더러워진 어항을 닦고 물을 갈아주었다. 꽤 고된 과정이었다. 어항에 깔린 돌까지 여러 번 씻고, 정수물을 고이 받아 담아야 했다. 먹는 것도 까다로웠다.

“가재가 왜 밥을 안 먹지? 가재는 다양한 밥을 먹어야 한다는데. 엄마 새우나 오징어를 주면 안 될까?”

“아니, 우리도 아껴 먹는 새우를 가재에게 준다는 말이니?”

인색한 엄마다.

하지만 나는 생새우와 오징어를 사서 냉장고에 넣는다. 정말 가재는 사료만 먹는 것만 아니라, 새우, 오징어, 당근, 양배추도 먹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탈피를 했다. 탈피를 하면서 없던 팔도 생기고 덩치도 커졌다. 정말 캐나다산 랍스터만 해지면 어쩌지.

 아들들의 정성 덕분인지 가재는 날마다 자랐다. 엊그제는 팔에 반점이 생겼다며 며칠 내내 수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며 소금물에 가재를 목욕시켜주기도 했다. 아니 가재 한 마리에 이렇게 할 일이야? 정말 그렇게 했다.


“얘들아. 가재 한 마리 키우는 일에도 이렇게 수고와 정성이 들어간다. 그렇지? 뭐 느끼는 거 없어?”

“뭐가?”

“아니, 감사하지 않냐고.”

“응?”

아들들은 정말 모르는 눈치다. 이런 상황에서도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나의 양육의 수고와 노동을 보상받으려 하다니.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도 말해준다.

“가재 한 마리에도 이렇게 정성을 쏟는데. 내가 너희를 먹이고 입히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겠니. 그렇지? 그러니 엄마 아빠한테 감사해.”

“응 고맙습니다.”

“응 그래. 잘 커줘서 고맙다.”

꼭 교과서적인 마무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엄마의 대화법에도 아들들은 기꺼이 응해준다.


가재가 노니는 물을 갈아주는 날, 밖으로 잠시 나온 가재는 어김없이 아들들의 손가락을 꽉 문다. 손가락이 물려도 기분 좋게 허허 웃는 아들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겸손해진다

아, 저 조건 없는 사랑! 아낌없이 주는 사랑과 돌봄!! 효도는커녕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자신을 키워준 대상에게 상처를 내는 존재에게 한없이 베푸는 미소라니. 미안하다. 아들들아. 엄마도 그렇게 너희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야 하는데. 내일은 노력해볼게!!



수고로움 레시피

*대충 막 하지만 이상하게 맛있는 이주부 밥상

(※참고: 기본 베이스 양념이 다 맛있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맛이 납니다. 집된장과 국간장은 한살림 선생님들 따라가서 일손 거둔 거밖에 없지만 직접 만든 것들이라 훌륭합니다. 대부분 유기농 재료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빠의 건강 때문에 현미밥이 대부분입니다. 정확한 계량은 하지 않는 편이어서 맛이 뒤죽박죽입니다. 빠른 시간에 후다닥 차리는 게 특징입니다. 따라 하지 마세요. ><)


제육볶음, 상추샐러드, 메주콩현미밥. 옛날 접시, 깨지지 않는 그 접시. ⓒ이주부



<제육볶음과 상추샐러드>

1. 돼지뒷다리 혹은 앞다리살을 양념한다.

2. 양념은 고춧가루, 고추장, 조청, 사과농충액, 다진마늘, 생강청. 적당히 짭쪼롬하고 달큰하게.

3. 양파와 파, 양념한 돼지고기를 넣고 볶는다.

4. 썰어놓은 상추에 드레싱을 하여 곁들인다.



시금치나물, 배추김치, 키위 견과류 샐러드, 불고기, 보리섞은 밥. ⓒ이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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