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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Jun 07. 2021

깍쟁이 물리치기 대작전

저녁밥에서 얻는 용기와 지혜

저녁 밥상에 둘러앉는다. 오늘 있었던 일, 재밌었던 일, 슬펐던 일, 급식 메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우리 집 밥상의 최대 이슈는 딸둥이 반의 “<깍쟁이 무리>를 어떻게 이겨내는가”이다. 

전학 온 지 한 달째. 1호와 2호는 학교에 대해 만족했다. 우선 열두 살 정도 되면 유치 찬란한 어휘와 행동이 좀 줄어든다. 타인에 대해 의식하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을 배운다. 물론 기호나 선호도는 더 뚜렷해진다. 1호와 2호가 아직 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선생님들의 열의와 정성으로 학교 수업을 잘 배워나가고 적응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3호와 4호네 반이다. ‘아홉 살 인생’이라는 영화도 있지만 지금 아홉 살들은 여덟 살 때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아이들이 아니다. 코로나로 1년 동안 거의 등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 공동체 의식과 문해력(文解)이 다소 부족하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여하튼 어린 나이에 전학을 가서 주눅 들은 3호와 4호는 같은 반임에도 불구하고 힘들어했다.


포도(가명)는 몇몇 여자애 무리들을 끌고 다닌다. 큰소리로 3호에게 구박을 준단다. 무슨 말만 하면 나무란단다. 당당하게 왜 말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3호가 울면서 말한다. “나는 전학생이잖아. 우선 아이들 말을 잘 따라야 한다고.” 


참외(가명)는 소리를 잘 지른다. 사투리로 윽박을 지르니 더 무섭다. 4호가 줄을 잘 맞추지 않거나, 잘 듣지 못하면 너는 왜 그러냐고 잘 좀 하라고 구박을 한단다. 전학 오기 전 모든 반 애들을 친구 삼고, 개그맨처럼 친구들을 웃겨주던 4호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며칠을 엉엉 울었다. 


나는 몇 문장을 예시로 제안했다. 무척 감정적인 조언이다. 그 깍쟁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시켰다. 

“우리 오빠 5학년이야. 두 명이나 있어. 엄청 키 크고 무서워! (사실 안 무서움) 진짜야. 못 믿겠으면 이따 12시에 대공원으로 나와. 뭐? 싫다고? 겁쟁이야? 아니라고 어쩔 거냐고? 됐어. 너 친절하게 말하지 않으면 나도 너랑 말 안 해.”

애들이 깔깔거리며 박장대소한다. 입안의 밥풀이 튀어나온다. 엄마의 조언은 깍쟁이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딸들은 상상만으로도 재밌나 보다. 1호와 2호도 조용히 웃는다. 


1호는 말한다.

“근데 그런 애들도 좀 크면 성격이 바뀌기도 해. 나도 옛날에 욕 잘하는 애들 무서웠는데, 나중에는 친해졌어. 나름 착하더라고.”

2호도 거든다.

“선생님한테 말해. 그래도 안 되면 상대 마. 근데 원래 너도 대꾸 잘하잖아.”

솔직 담백한 오빠들. 어쩐지 3호와 4호는 기분 좋게 밥을 끝까지 먹는다. 


<깍쟁이 물리치기> 아니 <깍쟁이 다루기>는 어른이 되어도 참 힘든 영역이다. 나 같은 경우는 ‘관계 회피형’이다. 그들을 상대할 에너지와 시간을 줄인다. 어떤 관계들에 휘둘리기 전에 발을 뺀다.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꽤 오랜 시간 함께 지내야 할 아이들은 신중해진다. 아이들은 어떤 태도로 관계의 어려움을 풀어 나갈까?

흔한 남매의 흔한 밥상. 하지만 오고 가는 대화들은 흔하지 않다. ©이주부


밥을 다 먹고 4호가 말한다.

“엄마, 그래서 내가 ‘무엇이든 시계’를 빨리 발명하려는 거야. 시간을 되돌릴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계 말이야!”

꽤나 진지하게 말하는 4호는 조만간 ‘무엇이든 시계’로 옛날 학교로 돌아갈 것만 같다. 친구들을 실컷 웃겨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돌아오겠지. 깨끗이 비운 식판을 보니 3호와 4호는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것 같다. 사실 오늘 용기 내어 깍쟁이 친구에게 “알았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단다. 엄마의 실없는 농담과 오빠들의 츤데레 격려에 쓸쓸하고 생채기 난 마음이 여며지는 중이다. 가족이다. 참, 아쉽게도 아빠는 퇴근 전이다. 




수고로움 레시피


*

대충 막 하지만 이상하게 맛있는 이주부 밥상



(※참고: 기본 베이스 양념이 다 맛있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맛이 납니다. 집된장과 국간장은 한살림 선생님들 따라가서 일손 거둔 거밖에 없지만 직접 만든 것들이라 훌륭합니다. 대부분 유기농 재료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빠의 건강 때문에 현미밥이 대부분입니다. 정확한 계량은 하지 않는 편이어서 맛이 뒤죽박죽입니다. 빠른 시간에 후다닥 차리는 게 특징입니다. 따라 하지 마세요. ><)


집밥 레시피 ©이주부

<집밥 레시피, 특별히 쌈장 레시피>

*메뉴: 미역국, 양배추쌈, 쏘야 볶음, 쌈장

1. 매실, 조청, 간 마늘 1큰술 섞는다.

2. 된장:고추장=2:1 비율로 1에 넣어 잘 섞어 준다.

3. 땅콩크림(한살림)과 볶은 콩가루를 조금 넣어준다.

4. 절구로 빻은 참깨와 들기름을 넣어 마무리. 

어디에나 어울리는 고소하고 구수한 쌈장 완성. 아이들의 최애 소스. 

어른들은 고추를 다져 넣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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