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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Sep 27. 2021

외할머니 밥상

엄마가 없는 엄마의 사랑을 먹다

 나에게는 외할머니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외할머니는 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정말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는 평균 엄마들보다 나이가 많을 수밖에. 쪽진 머리와 비녀, 옥색 고운 한복을 입고 우리의 재롱에 맞장구 쳐주던 외할머니.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왔어.” “아이고 힘이 천하장사네.”하며 마냥 귀여워해 주시던. 그것마저 1년에 두어 번. 치아파타 한 귀퉁이 조각 같이 하얗게 떨어지는 기억들뿐이다. 부스러기도 맛있는 참 귀한 추억이다.


 그런 내가 가끔 듣는 말은 “당신은 외할머니 같다.”라는 것이다. 손님이 집에 자주 오는 편이라 음식 대접을 하지만 솜씨도 없고, 특별한 맛을 내지도 않기에 그런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게다가 나는 외할머니 밥을 먹어본 적도 없다. 대체 ‘외할머니 같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도저히 나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여 생경하기만 했다.


 “집사님 또 주세요? 이제 배불러서 못 먹겠어요.”

 “큰엄마 식탁은 미국 같아요.”


 아, 내 손이 크구나. 그제야 생각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유추하니 외할머니 밥상이 가늠이 되었다. 무엇이든 더 이상 못 먹을 때까지 이거 저거 주고 싶은 마음이 외할머니 마음이구나 했다. 친할머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이미지는 외할머니들이 확률적으로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친할머니도 있고, 외할머니도 있다. 바깥 外(외) 자를 쓰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린 나는 사실 아이들에게 할머니 이름을 부르게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름을 부른다. 여하튼 사회적 호칭으로 외할머니인 우리 엄마는 실제 당신의 친정엄마의 밥상이나 산후조리를 받아본 적이 없었을 텐데도 본능적으로 더 이상 못 먹을 때까지의 밥상을 늘 준비한다.

임영웅 컵이 돋보이는 친정엄마의 아침상 ⓒ이주부


 “일어나 밥 먹어라.” 엄마 집에서 자니 평상시 듣지 못한 말을 듣게 된다. 이 말이 이토록 반갑고 고마울 줄이야. 엄마는 아침부터 갈비를 굽고, 도토리묵을 무치고, 딸이 좋아하는 도라지를 맛깔나게 빨갛게 무쳐낸다. 손주들을 위해서는 따로 멸치를 볶고, 오징어채를 볶고, 장조림을 한솥 했다. 전날부터 떡을 빚을 준비를 하고, 밤을 삶는다. 아이들은 아침에 쌀을 먹는 횡재를 누린다. 시리얼과 빵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밥도 좋아하는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울 엄마, 엄마 얼굴을 모르는 울 어머니. 이 두 어머니의 밥을 먹고 자란 나와 남편은 깨닫는다. 꼭 받아봐야만 사랑인가. 퍼주면서 풍성히 채워지는 그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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