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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감기

2025.11.26 (11m 4d)

by 슈앙

어제저녁부터 콧물이 맺히더니 오늘은 끝도 없이 나온다. 코로 숨쉬기 힘들어 입을 벌리고 있는 바람에 침은 수도꼭지 틀어놓은 거처럼 주륵주륵 흐른다. 매번 턱받이가 푹 적셔졌다. 모자랄 것 같아 앞뒤로 돌려가며 써도 20개 넘는 턱받이가 동났다.

콧물이 주륵주륵

어젯밤에는 자다가 엄청 울었다. 꺼이꺼이 울어서 진정하는데 한참 걸렸다. 코가 막혀 숨이 잘 안 쉬어지다가 콧물이 뒤로 넘어간 거 같았다. 아마 콧물 먹는 경험은 처음인 데다 자다가 봉변당한 거처럼 느껴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한다. 처음엔 수면 교육한답시고 누운 채로 진정시켰는데 울음소리가 점점 심해져서 안았다. 하지만 안아주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결국엔 일어서서 안았다. 한참 토닥이다 겨우 재웠는데 한 시간 뒤에 똑같은 이유로 울어서 다시 달래야 했다. 다시 5시간 뒤 찡찡 거리며 일어났다. 그때가 새벽 4시였다. 2시간을 더 재우다 달래다 했다.


아침에 양갱이 챙기다 주변을 둘러보니 집은 엉망이고 온 바닥에는 침과 콧물로 얼룩졌다. 심지어 이유식도 만들어야 했다. 양갱이는 오줌 싼 바지 갈아입어야 하는데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너무 짜증 났다. 짜증 나서 에이씨! 하고 작은 소리로 내뱉었다. 남편은 처음 보는 내 모습에 놀라 아무 소리 내지 않으며 조용히 시키는 일만 했다. 한동안 우리 둘은 별말 없이 양갱이 돌보면서 집안일을 했다. 집이 조금씩 정돈되면서 기분이 나아졌다. 불안했을 남편에게 짜증 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남편이 출근한 뒤, 이유식 만들어 먹이고 나도 라면 끓여 점심 간단히 때웠다. 간간이 콧물 빼내고 오줌 바지 갈아입히면서 마음이 좀 정리되고 있었다. 여전히 온 바닥이 너저분했지만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점심 분유를 먹였다. 양갱이는 숨쉬기 힘들었는지 잘 먹다가 갑자기 젖병을 탁 걷어냈는데 그만 젖병이 날아가 깨져버렸다. 와장창창 소리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다리가 뜨끈해서 보니 양갱이는 내 무릎 위에 누운 채로 오줌 쌌다. 바닥에는 유리 파편으로 위험한데 양갱이 바지 갈아입혀야 하고 분유도 다시 타서 먹여야 했다.


마침 남편에게서 전화 왔다. 양갱이 동영상 좀 찍어 보내달라는 것이다. 상황이 너무 웃겼다. 짜증이 아니라 웃음이 났다. 거실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잠시 뒤, 남편은 잠시 집으로 와서 깨진 유리젖병과 쏟아진 분유를 치워줬다. 고마웠다. 이렇게 엄마가 되어 가는 과정은 곧 부처로 가는 수행길인가보다.

해가 떨어지니 열까지 났다. 38.2. 오늘 밤에 지켜보고 열이 지속되면 병원에 가볼 예정이다. 요즘 독감환자가 많아 맑은 콧물 정도론 병원에 가지 않는 게 낫다는 게 내 지인들의 의견이었다. 코감기로 인한 미열 수준이라 큰 걱정 하진 않지만, 양갱이는 요로감염 때문에 열나면 무조건 소변 검사를 해야 한다. 별일 없이 오늘 밤 무사히 지나가길! 내일 아침에는 열도 내리고 콧물도 쏙 들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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