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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Dec 03. 2018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정류장'

정류장을 거쳐 가는 사람들과 함께 피어오르는 잔상과 흔적들






마지막 정류장을 향해 갈 때도, 집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 안에도 기사님과 나 두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한 번은 혼자라고 또 한 번은 둘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줄어들고 채워지며 달라지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퇴근길 만원 버스에 올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리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며, 다시 둘이 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출근길 텅 빈 버스가 하나, 둘 익숙한 사람들로 채워지는 모습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종점' 중)






2018년, 겨울이 내려 앉기전의 선유도






다시, 둘이 되는 시간이었다. 종점까지 함께 가려나, 라는 생각이 바뀌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 남자가 앞문으로 내리며 누군가에게 크게 손을 흔들었다. 남자가 내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함께 손을 흔드는 여자. 밤 열한시가 넘은 시간, 두 사람은 각자의 시간에서 서로의 시간이 되는 그 순간을 누구보다 기다렸던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만남이 시작되고, 누군가에게는 만남이 끝나는 곳.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정류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뉴스와 영화를 보고,
부족함 잠을 채우는 그 사이사이
생각보다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2018년, 겨울이 내려 앉기전의 선유도






버스정류장, 전철역, 기차역 그리고 택시정류장까지. 타고, 내리고 다시 또 타고 내리는 단순한 반복이 이어지는 공간 중 하나이다. 이런 정류장을 더욱 '단순한' 공간으로 만든 것은 '기술'의 영향으로, 우린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매 번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언제쯤 도착할까- 라는 걱정 없이 기다림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도착 시간은 물론, 혼잡도까지 가만히 앉아서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정류장을, 내게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그날 그 두 사람의 손짓과 조은 시인의 '언젠가는'에 나오는 정류장 때문이었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조은 - 언젠가는 중)






2018년, 겨울이 내려 앉기전의 선유도






꽃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나는 정류장을 거쳐 가는 사람들과 함께 피어오르는 잔상과 흔적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했다. 순식간에 사라져 다시는 보지 못할, 아주 미세한 잔상들을 말이다.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 만남과 헤어짐이 어우러지며 짙은 아쉬움과 슬픔, 즐거움과 설렘을 남기기도 하고 술에 취해- 생각에 취해 내뱉은 독백들이 금세 잊힐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잔상들이 정류장에 머물며, 지나치며 하나, 둘 쌓여갔다. 



운 좋게 막차의 막차를 타게 되어 앞사람들이 놓고 간 하루를 통째로 들고 타보기도 하고, 언젠가 내가 놓고 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머물러 있는 잔상들을 용기 내어 가져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오늘의 아쉬움은 잔뜩 내려놓고 내일의 새로움을 안고 타기도 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잔뜩 버스에 올라
모든 움직임이 사그라드는 순간,
기존의 적막과 고요 대신
내겐 사람들의 흔적이 한가득 몰려왔다.






2018년, 겨울이 내려 앉기전의 선유도






오랜만에, 버스에 함께 타지 않고 그녀가 오르는 모습만 바라보게 되었다. 영등포에서 성남으로 향하는 버스. 보통의 우리라면 함께 버스를 타고 성남으로 이동해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짧고 긴 환승을 했겠지만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아쉬움과 낯섦, 두려움이 생겨났다. 누군가의 흔적과 잔상이 아닌, 내게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의 흔적을 두고 가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버스와 함께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 나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들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정류장을 한 번 더 훑고 나서야 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여전히, 정류장은 단순한 공간으로 다가올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내려놓은 흔적들을 엿보고
놓치기 싫은 잔상들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나 역시 어제의 정류장이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생각에 목이 메일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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