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균열은 서서히 벌어졌다.
놓쳐 버린 기회, 무너진 계획, 흔들린 마음, 멀어져 간 사람…
처음엔 작은 금 하나였다. 오래된 도자기에 실금이 가듯, 일상에 미세한 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눈치채지 못한 채 연말을 향해 시간이 달려가는 동안, 그 금은 조금씩 벌어져 갔다. 별것 아니라고, 더 급한 일을 해야 하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외면한 사이 그 틈은 점점 벌어져, 어느새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깊어졌다.
점점 커지는 균열의 틈을 나는 통제할 수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나는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세운 계획들은 하나둘 미뤄지고, 다짐했던 일들은 흐지부지 머릿속 한 켠으로 사라졌다. 글쓰기 루틴은 무너지고, 나도 모르게 브런치 앱을 피해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기다리던 브런치 팝업전시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서촌으로 향했다. 서촌 골목의 고즈넉하고 단아한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니 전시장 앞에 지인 작가가 반가운 얼굴로 손을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우리는 브런치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손목이 앙상하게 드러난 그녀가 안쓰러워 이것저것 사주었지만, 브런치 공모전을 위해 이미 한참 퇴고 중이란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마감을 앞둔 작가 특유의 단단함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나는 대체 뭘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 것일까?
이제 겨우 일주일 뒤면 브런치 공모대전 마감인데…
우리는 식사 후 브런치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년 전시와 달리 더 발전한 전시형태에 편안하게 관람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는 작가들이 제법 늘어난 덕분에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지인들의 작품과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니 뿌듯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내 글도 여기 있으면 좋을 텐데...'
목까지 차오르는 후회를 삼키며, 브런치에 대한 내 진정성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되묻는다.
메모노트에 내 다짐을 적어 벽에 붙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야,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서촌까지 간 보람이 있지.
바로 자극을 받기 위해서였잖아.
그동안 이것저것 일을 벌여놓고 뭐 하나 확실하게 끝맺지 못한 내 상태,
여러 개 열린 브라우저 창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내 일상을 생각하며,
다음 주까지 제대로 쓰기로 결심을 되새긴다.
이젠,
달콤한 늪에 잠겨있던 나를 일으킬 때다.
다음 주엔,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마무리해야지.
그렇게 하나씩,
벌어진 균열을 메워나가야겠다.
2025년 끝자락이 보이는 지금은 10월 중순.
남은 4분기만큼은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아야겠다.
다시,
단단해져야 할 때다.
*대문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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