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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목어에게 묻다

by 끌레린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홍천 끝자락.

'아름다운 마을'을 둘러싼 경이로운 자연이 나를 반긴다.

시원한 공기가 코끝을 스치고, 따사로운 햇빛은 내 얼굴의 그늘을 없앤다.

티 없이 작은 초록빛 이끼와 연둣빛 동그란 잎들로 가득한 폭신한 흙을 지나, 단단한 오솔길에 접어든다.

계절의 옷을 막 갈아입은 길옆, 발갛게 노랗게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무들이 제 영역을 침범한 나를 가만히 지켜본다. 산을 지키듯 빽빽이 늘어선 나무들 사이를 지나 언덕배기를 향해 발을 구른다. 코로 들이킨 화한 피톤치드 향이 달궈진 머릿속을 시원하게 가라앉혀준다.


붉은 갈색의 둥근 잎들,

손가락 모양의 빨간 잎들,

자그마한 노란 잎들,

뾰족한 초록 잎들까지.

손끝에 닿는 낙엽은 한없이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켜켜이 쌓인 낙엽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존재를 과시한다. 검고 작은 생명들은 낙엽 사이를 바삐 돌아다닌다. 숲속 온갖 거주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낙엽의 삶'을 생각한다. 듬성듬성 박힌, 자연 그대로의 돌들이 침입자를 가로막는다. 좁은 길 오른쪽, 개울이 점점 더 큰 목소리를 낸다. 우렁찬 물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운다.


아, 드디어 도착했다.

계곡의 하얀 물보라가 뺨을 적신다. 여름이었다면 떼 지어 폭포를 뛰어올랐을 열목어들. 추워진 지금, 겨우 한 마리가 폭포를 거슬러 뛰어오른다. 그것이 그려내는 긴 포물선에 감탄이 솟아난다. 거대한 해일처럼 폭력적이고 세찬 물줄기를 거슬러, 온몸으로 뛰어오르는 그 날렵한 자태에 묻는다.


너는 어떤 본능과 열망을 품었기에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걸까.

폭포를 뛰어넘었는데, 왜 만족하지 않고 다시 뛰어오르는 걸까.

그러다 떨어져 죽어도 괜찮은 걸까.


위험을 무릅쓴 너에게서 배운다.

절망하지만 않는다면,

오늘의 미약한 시도는

새로운 내일의 나를 만들 것이란 걸.


작가 노트
'아빠의 빈구두를 신었습니다'를 읽고 저자와 아버지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 '아름다운 마을'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홍천 끝자락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은 책의 저자 안은미 작가가 운영하는 교회와 부속마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풍광이, 그녀의 아버지가 20여 년간 공들여 만들어온 마을이, 나를 해방시켰습니다. 아무리 가는 길이 멀어도 자주 가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높고 거센 폭포를 거슬러가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얼목어는 계속 뛰었다. 아무리 발악해도 오르지 못하는 열목어가 가여웠다. 왜 하필 이 힘든 폭포로 와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는지. 가끔은 뛰어오르다 거센 물에 튕겨 나가 얕은 물이 고인 웅덩이에 내동댕이 쳐져 허우적댔다. 계속 시도해도 성공은커녕 갇혀있는 고통까지 경험하는 녀석들이 안쓰럽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꿈 한번 꾸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는 게 더 가여운 일이 아닐까. 열목어들이 폭포에서 내뿜는 물살에 지레 겁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전설 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렇다. 실패해도 지치지 않고 노력하는 열정의 열목어들은 대단한 녀석들이었다. 실패했다고 환경에 주저하지 않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붙잡았다."


-안은미, 아빠의 빈구두를 신었습니다.



대표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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