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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선 안 될 감정 Part. 1

어느 잘생긴 내담자의 사연

by 전민교

언젠가, 아주 훤하고 잘생긴 내담자가 찾아왔다.

LA에서 패션모델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작은 얼굴에 길쭉한 팔다리, 갈색 장발의

백인+남미 혼혈이었다.


마치 배우 데이브 프랭코의 젊고 키 큰 버전 같았다.

Dave Franko.jpg 배우 데이프 프랭코 Dave Franco 출처: 핀터레스트


‘배우 같네, 완전 잘생겼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를 만나자마자

첫 상담에 이뤄지는 초기면담(intake session)을 진행했다.


프리랜서라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아

쉬는 날엔 우버이츠 배달 일을 한다는 그는,

술과 대마초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었다.

약물 중독이었다.


“사실 우리 엄마는 지금 정신건강의학 병동에 있어.

의사 말로는 편집증 조현병이래.

한마디로 미쳤다는 거지.

나도 언제부턴가 엄마 보러 안 가.

병원이 바로 옆 동네인데도.”


그의 엄마는 16살에 그의 큰형을 낳고,

34살까지 그를 포함해 8명의 아이를 낳았다 했다.

모두 이부형제들이고, 전부 아빠가 다르다.


엄마는 정신은 온전치 않았지만

미모가 워낙 뛰어나 곁에 남자가 늘 있었다고 했다.


처음엔 엄마의 외모보고 다들 다가왔지만,

결국 엄마의 불안정한 모습에 지쳐 떠났다고 한다.


“엄마는 호더(hoarder: 수집강박증 환자; 물건이나 쓰레기를 집안에 지나치게 쌓아두는 사람)였거든.

온갖 쓰레기를 집안에 두는데 누가 같이 살 수 있겠어.”


그는 형제들과 쓰레기집에서 몇 년을 살았다고 한다.

엄마가 정신병동에 입원한 뒤엔 큰 형이 동생들은 돌봤다.


“그때 형한테 의지를 많이 했었는데

돌이켜보니 형도 고작 15살이었어.”


계속되는 생활고에 지친 형은 마약에 손을 대었고

지금도 길거리 어딘가를 떠돌며 살고 있다고 했다.


작은 형, 누나들도 전부 고등학교 중퇴했고,

지금도 변변치 않게 살아간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성공하고 싶었어.

그래서 죽도록 공부했어. 대학을 가고 싶었거든.

그렇게 UCLA에 붙었어.

우리 집안에선 유일하게 대학을 간 케이스였어.”


학비를 벌려고 시작한 카페 아르바이트에서

그는 모델 캐스팅을 받았고,

지금까지 모델 일을 이어온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서 열심히 일해.

그런데 다들 나한테 뭘 빼먹으려고만 해.

사기도 몇 번 당했어. 번 돈을 한순간에 다 잃었어."


"난 그저 보금자리를 원했어.

그래서 여자친구들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그들도 나를 구해주진 못하더라."


그의 얼굴엔 고독이 있었다.
술과 대마초는 그 외로움과 슬픔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도구였다.


엄마에게 사랑을 못 받고 자라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했던 그가 채우려 했던 건,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으로 텅 빈 마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내면 아이(inner child)’ 작업을 시작했다.

게슈탈트 치료(Gestalt Therapy) 기법 중

빈 의자(Empty Chair) 기법을 사용했다.


빈 의자를 그의 옆에다 둔 후 말했다.

“이 의자에 9살이었던 너 자신을 앉혀봐.
그리고 그 어린아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네줘.”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꼬맹이, 잘 지내냐. 난 29살의 너야. 어때, 늙은 너의 모습 보니까."


그는 마치 정말로 어린 자신이 의자에 앉아 있는 듯,

말을 시작했다.


"너… 힘든 거, 아무도 몰라줘서 속상했지?
동네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싶다고

1시간만 밖에 놀다 오겠다고 엄마한테 말했는데

엄마가 ‘사탄이 든 애들이랑 왜 노냐’면서

커피가 들어있던 머그잔을 너한테 던졌을 때,
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벌벌 떨었지.
무서워하고 있던 널 달래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결국 축구도 못 하고,

혼자 침대에서 울다 잠든 너를, 너무 안아주고 싶어.


지금 모습 그대로 그때로 돌아가서

너의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나가

숨이 헐떡일 때까지 같이 축구하고 싶어.

땀방울 송골송골 맺힌 너의 콧잔등과 이마를 닦아주며
네가 좋아했던 파란색 게토레이도 잔뜩 사주고 싶고…


근데 지금 내 모습을 네가 보면 속상하겠지?
형 누나들이 맨날 맥주 마시고 대마초 필 때

그 냄새 싫다고 방에 들어오지도 않던 너였는데,
내가 지금 똑같이 하고 있어.”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이내 눈물을 쏟았다.


“미안해… 미안해…
너에게 자랑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새 내가 망가져 있었네.

난 널 너무 사랑해. 그런데 널 오랫동안 잊고 있었어.
이제부턴 너에게 자랑스러운 내가 될게.

꼭 건강해져 볼게.

버텨줘서 고마워,

삶을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사랑해… 아주 많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감정적으로 힘든 이 치료 기법을 끝까지 완수한

그를 아무 말하지 않고 꼭 안아주었다.


[곧 Part 2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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