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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선 안 될 감정 Part. 2

그만 설레고 말았다

by 전민교

그 이후 그는 놀랍도록 달라지기 시작했다.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대마초를 같이 피우던 친구들을 조금씩 멀리했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모델로서 필수인 자기 관리를 본격적으로 했다.

매주 상담 때마다 그는 전보다

더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삶의 의욕이 없던 얼굴이 생기를 되찾아갔다.


어느 날, 패션 화보 촬영이 끝나자마자 온 그는,

장발 머리를 깔끔하게 자르고 멋진 슈트를 입고 나타났다.
평상시보다 다른 모습에 내가 "오늘 멋있네!"라고 말했더니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알아? 너 만나고 내 인생이 바뀌었어.
넌 상담사를 넘어서 내게 라이프코치 같은 존재야.
내가 나중에 유명해져서 TV쇼에 나가면

꼭 너의 이름을 언급할게.
그만큼 너는 내게 너무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야."


순간 무언가가 일렁거렸다.

설명할 수 없는 이 묘한 감정을 뒤로하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이 모든 건 네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상담에 참여한 결과야.
스스로에게 꼭 칭찬해 줘.”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꿔서 안 될 꿈을 꾸었다.


그와 내가 분위기 좋은 펍에서 술을 마시며 데이트하는 꿈이었다.

서로 은근한 스킨십을 하고 플러팅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킥을 했다.

이런 죄스러운 꿈을 대체 왜 꾼 거야.


그날부터 그와의 상담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내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설레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기에, 슈퍼바이저에게 상의를 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내담자는 누구한테도 말 못 했던 상처와 치부를

상담사에게 드러내야 하는 입장이고, 매우 취약한 입장이야.


상담사는 그런 내담자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를 돕는 사람으로서,

내담자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게 돼.


그 과정에서 상담사는 연민, 동정, 그리고 때론 로맨스 감정이 생기기도 해.

사실 이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이야.”


이렇게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느끼는 감정들과 생각들을

역전이 (counter‑transference)라고 한다.


역전이가 일어나는 건 매우 흔하고 정상이지만,

적절히 대응을 해야만 한다.


"그 내담자하고 만날 때마다 너 스스로

감정을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경계 설정을 확실히 해야 해.


즉 상담사-내담자의 경계를 명확히 지켜야 해.

잘 알고 있겠지만, 내담자하고의 로맨틱한 관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허용이 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감정 조절이 힘들고 견디기가 어려우면,

그가 다른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해."


그와 상담을 한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는 더 이상 술과 대마초에 빠져 살지 않는다.


모델로서 자리도 잡혔고, 이쁘고 착한 여자친구도 생겼다.

인플루언서로도 꽤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


치료목표(treatment goals)를 도달한 그에게

축하하다는 말과 마지막을 알렸다.


그는 마지막 날 꽃다발을 들고 왔다.


"덕분에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어.

지금까지의 상담 잊지 않을게."


문을 나서며 그는 뒤돌아 말했다.

"2년 후엔 우리 상담사‑내담자 사이 아닌 거다?

그땐 꼭 밖에서 만나자. 밥 대접하게 해 줘."


상담사‑내담자 관계가 끝나고 최소 2년간은

로맨스 관계를 맺지 않도록 하는

The 2‑year Rule이라는 전문 윤리 기준이 존재한다.

그걸 두고 한 말 같았다.


그건 도대체 어디서 듣고 저런 말을 하는 거야.

그는 마지막까지도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다시 한번,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는 정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내담자의 취약함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더욱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선

자기 인식과 감정 조절,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그는 내게 가장 어려운 내담자 중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내가 가장 성장하게 된 내담자였다.


그를 통해 나는 상담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더 단단해졌다.

상담실의 문 너머에서,

나는 매 순간 흔들렸고 스스로를 붙잡아야 했다.


감정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책임 없는 감정은 위험이 된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내 자리에서 나의 역할을 지킨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끝까지 내담자를 위하기 위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으며, 사례와 상황 역시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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