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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고?

by 전민교

“우리는 단순히 상담실에서

상담만 해주는 상담사를 구하는 게 아니야.


내담자들의 삶에 필요한 것들이라면

어디든 발 벗고 갈 수 있는 상담사를 원해.”


회사에 들어가기 전,

면접 자리에서 디렉터가 내게 해준 말이다.


그녀는 이어 말했다.


“가끔은 상담실에 앉아서 하는 심리 치료보다
그들의 삶의 터전에 직접 들어가 돕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상담이 아닌 다른 일들을

이.렇.게.나 많이 하게 될 줄은.


루이자는 경증의 지적 장애와

중증의 조울증을 가진 내담자였다.
그녀는 보드앤케어*에서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외근 상담사로 발탁됐다.


보드앤케어(Board and Care: 일상생활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 노인, 등을 위한 소규모 주거형 요양시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입주자 한 명과 시비가 붙어
결국 다른 시설로 옮겨야 했다.


나는 그녀의 딸에게 연락해 이삿짐 정리를 부탁했지만,
딸은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느라 여력이 없었다.


이삿짐센터를 부르기에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그녀에게는 무리였다.
비용도 문제였고.


결국 내가 했다.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는 봉고차를

회사 다른 부서에서 빌려,
보드앤케어로 직접 향했다.


짐을 싸고, 차에 싣고,
그녀를 태우고, 짐을 내리고, 정리까지.


차를 무서워하던 그녀를 설득해서 태우고,
운전 중에도 계속 말을 걸어 안심시켜 줬다.


몸 쓰랴, 말 걸랴, 이사 수속 밟으랴,
한겨울인데도 발바닥에 땀이 찼다.


내담자 폴은 Section 8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Section 8은 미국 저소득 가정에게
정부가 월세를 보조해 주는 제도다.)


그는 말기 신부전증 환자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서 투석을 받아야 한다.


거동도 불편하고, 광장공포증까지 있어서

그에게는 외출이 쉽지 않았다.


나는 그를 내 차에 직접 태워
병원까지 데려다줬다.


치료를 받는 동안엔 함께 대기해 줬고,
끝난 후엔 다시 부축해서 집까지 데려다줬다.


내담자 니콜라스는
교통사고 이후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탄다.
일자리까지 잃으며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를 위해 나는 SSDI* 신청을 돕기로 했다.


SSDI (Social Security Disability Income): 미국 사회보장국이 장기적 장애로 일할 수 없는 이에게 지급하는 장애 소득 보조금.


그의 병원 기록, 세금 서류를 대신 떼고,
사회보장국에 우편으로 보내는 일까지 내 몫이었다.


심지어 내담자들이 신분증이나 운전면허가 필요할 땐
DMV(운전 관련 행정 기관)에 데려다주고
접수까지 함께 도와준다.


민사 분쟁을 위한 소액 재판을 원하거나
탄원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로 도와주었다.


솔직히 처음엔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지?'


고상하게 상담실에 앉아,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학교에서 배운 기법으로 도와주는 일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생고생이었다.

현타가 엄청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루이자에게 전화가 왔다.


“이사 도와줘서 고마워. 넌 천사야.
너 아니었으면, 난 아직도 그 지옥 같은 곳에 있었을 거야.
지금은 나 정말 행복하게 잘 지내.”


폴도 언제 이런 말을 했다.


“투석하러 가는 것도 무서워서

거의 삶을 포기한 나였는데

덕분에 다시 살아볼 희망이 생겼어.
나 꼭 건강해질게.”


그리고 얼마 전,
니콜라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SSDI 승인됐어!
신이 나를 버린 건 아니었어.

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기적이야, 이건.

정말 고마워.”


그제야 비로소 디렉터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담실에 앉아서 나누는 대화만이
치유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삶의 현장에 함께 뛰어들어,
그들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주는 것.

그게 진짜 상담이고,
진짜 회복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 뼘 더 성장한 상담사가 되어가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으며, 사례와 상황 역시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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