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수잔들에게
155센티 남짓한 작은 키, 깡마른 몸, 생기 없는 얼굴.
42세의 수잔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22살에 남자친구를 따라 돌연 미국에 왔다.
미국에 온 뒤, 남자친구와 함께 마약을 접했고,
점점 중독되어 돌아갈 시기를 놓쳤다.
그렇게 그녀는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동거하던 중 임신을 했고,
곧이어 그의 폭행이 시작됐다.
그는 아이를 지우길 강요했고,
결국 그녀는 원하지 않았던 중절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 그녀의 삶은 무너지고 말았다.
깊은 우울에 빠졌고,
중독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
모든 것을 잃고, 결국 홈리스가 되어
길거리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의 일이다.
이웃의 신고로 우리 기관에 연결된 그녀는
약물 치료를 받으며, 나와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수잔의 어린 시절은 폭력으로 가득했다.
매일같이 아버지에게 맞았고,
엄마와 동생들이 맞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도망간 거야. 살고 싶어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와 동생들을 두고 떠난 죄책감,
매일 되풀이되는 악몽,
남자친구의 폭행, 원치 않았던 임신 중절.
이 모든 걸 견디고 있던 그녀에게 마약은,
감정을 마비시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은 뒤,
그녀는 트라우마 치료와 중독 치료를 병행했다.
신앙생활도 시작했고, 단약도 시작했다.
“이제는 남들처럼 살고 싶다”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월세를 내며 독립된 삶도 꾸렸다.
그러다 그녀는,
회복 중인 또 다른 중독자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
비슷한 상처는 그들을 강하게 끌어당겼고,
곧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싸움은 반복됐고,
결국 서로 폭력을 휘두르며 경찰까지 개입하게 되었다.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나는 고통 속에서,
그녀는 또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직장을 잃었고,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 다시 노숙자 셀터로 돌아갔다.
모든 게 그녀를 처음 만났었을 때로 돌아가 있었다.
“왜 나는 아빠 같은 남자만 만나는 걸까.
신이 있다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그녀는 눈물범벅으로 내게 외쳤다.
나는 말했다.
“수잔, 우리의 뇌는 익숙함을 안전함으로 착각해.
네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그 환경이,
네 몸엔 ‘친밀감’이 되어버린 거야.
그래서 폭력적인 사람이 낯설지 않았던 거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제는 익숙한 패턴을 바꿔야 해.
폭력에서 존중으로, 분노에서 사랑으로.”
그녀는 결국 자신을 아프게 했던 연인과 이별을 했다.
그리고 다시 새 출발을 하고 있다.
“아버지 같은 사람만 반복해서 만났고, 마약에 의지했던 건
내가 나를 아끼지 않았다는 증거더라.
이제는 나를 아끼기 위해, 해야 할걸 하려고 해.
단약이 힘들어도, 외로움이 밀려와도,
이민국이 날 본국으로 돌려보내려 해도,
죽은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도,
이젠 견딜 거야.
그게 나를 사랑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면, 언젠가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나를 사랑해 줄 사람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두렵다고 했다.
하지만 두려워도 다시 일어나겠다고 했다.
그게 진짜 용기라고 말하며.
그리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일,
사랑을 두려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
그건 누구보다 치열하게 아파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수잔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또다시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아프면서도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부디,
가장 깊은 고통을 지나온 수잔에게
사랑이 언젠가,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도착하기를.
부디,
이 세상 모든 수잔들이,
사랑이 익숙함이 되길.
따뜻함이 익숙함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