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
“나 20분 늦어.
오늘 정신이 없어서 늦게 출발했어.”
아만다와의 상담 시작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시계는 이미 3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원칙상 15분 이상 지각하면 노쇼로 간주된다.
그녀는 이미 늦었지만,
전화를 걸어 더 늦을 거라고 알린 거다.
도착은 3시 반쯤 될 거라고 했다.
“저번 주엔 당일 취소했고,
이번엔 30분 늦는 거면 상담은 또 자동 취소돼.
첫 상담 때 설명했던 회사 방침이야.
내가 다음 예약은 다시 잡아줄게.
다음엔 꼭 시간 맞춰오면 좋겠어.”
최대한 부드럽게 전달했지만,
그녀는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잘 알잖아!
이미 택시 타고 가는 중인데,
지금 와서 다시 돌아가라고?
택시비도 냈는데 이걸 어떻게 그냥 버려?”
“속상한 그 마음 이해해.
그치만 지금 오면 어차피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이 30분 정도밖에 안 돼.
그러면 깊이 있는 상담을 하긴 어려워.
시간 맞춰 와서 1시간 온전히
상담을 하는 게 더 도움이 되니까
이런 방침이 있는 거야.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으, 시발! (Ugh, fuck!)”
외마디를 내뱉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그녀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그녀는 사과를 한 뒤 재예약을 했다.
그리고, 다음 상담에 시간을 맞춰 도착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지금 살고 있는 임시 거주지, 못 살겠어.
정신병자들이랑 같이 지내다 보니 나도 미칠 것 같아.
어제 어떤 미친년이 나한테 깐족대길래
한마디 했더니, 지랄해서 잡도리 좀 했어."
그녀는 곧바로 이어말했다.
"여기 관리자들도 똑같아.
돈은 받으면서 일은 안 해.
싹 다 고소해버릴 거야. 가만 안 둬.”
앉은 지 5분도 안 됐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격앙돼 있었고
어깨는 거친 숨으로 들썩였다.
그녀의 진단명은
'간헐적 폭발성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흔히 말하는 분노조절장애다.
이 진단의 특징은,
자극이 들어오는 순간 각성이 올라오고
그 감정이 언어나 행동으로 바로 터져 나온다는 점이다.
즉, 감정과 행동 사이에 '브레이크'가 없다.
작은 자극에도 감정이 폭발하고,
그 패턴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51세의 아만다는 어쩌다 그런 패턴을 갖게 된 걸까.
그녀는 할렘에서 자랐다.
자장가보다 총소리,
웃음소리보다 고함소리가 익숙한 곳이었다.
16살에 낳은 아들의 아버지는
갱단 활동으로 수감되었고,
그녀는 학교를 그만뒀다.
밤낮 없이 일하며 아이를 키웠다.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멸시와 무시를 견뎌야 했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는 독하게 살아야 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혼자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강함’이란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분노는 그녀가 세상 앞에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방패였다.
그 패턴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그 오래된 스키마를 깨닫게 하는 게
나의 첫 번째 목표였다.
그래서 나는,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에서 제안한
‘성장 서사’ 기반 대화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이는 상대가 자기 방어로 굳게 쥔
‘완성된 나’를 잠시 내려놓게 만든 후,
‘나는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들을 건넸다.
“그땐 그렇게 반응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반응하면 더 좋을까?”
“너에게 스키마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
“이 변화가 앞으로 어떤 삶을 가져다줄까?”
매 상담 시간마다 이 질문들을 반복했다.
처음엔 ‘평생 이렇게 살아왔는데 바뀌겠어?’
라며 거부하던 그녀도,
점차 ‘나도 변할 수 있나?’라는 가능성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 이후 우리는 ‘즉각 조절’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감정과 행동 사이에 의도적으로 5초의 간격을 두는 훈련이다.
기존 패턴이
열받는 일 발생 → 분노 폭발였다면,
바뀐 패턴은
열받는 일 발생 → 5초간 호흡 → 적절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이 훈련을 꾸준히 해냈다.
그리고 분노 대신 대화를 선택하는 방법을 익혀갔다.
호흡 연습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수면의 질도 좋아졌다고 했다.
명상과 운동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 커피도 멀리했다.
놀라운 변화였다.
그녀의 찡그리고 있던 얼굴이
언제부턴가 편안해져 있었다.
“나 상담 같은 거 안 믿었어.
평생 이렇게 살아온 내가
대화 몇 번 한다고 변할 거라고
생각을 아예 안 했지.
근데 알게 됐어.
난 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새로운 꿈도 생겼어.
블로그를 할 거야.
50 넘은 나 같은 고집불통도
변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어.”
그녀의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분노보다 그녀가
그토록 지켜내려 했던 자기 삶이
이제는 더 눈에 들어왔다.
삶을 버티기 위해
분노를 무기로 삼아야 했던 사람.
그 분노 뒤에 숨어 있던 건
사실 상처받기 두려운 마음이었다.
상담실 한 켠에서 그녀는
한 번도 허락받지 못했던 감정들을
처음으로 안전하게 풀어낼 수 있었고,
그것이 그녀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혹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상담은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어떤 마음도, 만져지면 변한다고.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으며, 사례와 상황 역시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