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문을 열자마자,
건장한 체격과 다소 거친 인상의 남성이
들어와 긴장한 듯 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의 이름은 잭.
“살면서 이런 거 안 해봤는데…”
두 손을 연신 비벼대며 잭은 얘기했다.
“오글거리지만 상담받아보려고 왔어.”
어색해하는 그에게 나는
용기 내어 와 줘서 고맙다며 상담을 시작했다.
잭은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선 한동안 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정도 진정된 후 그는 말했다.
“이거 진작 받을 걸 그랬어.
남자새끼가 그 좀 힘들다고 상담이나 받냐며
무시당하는 게 싫어서, 너무 오래 버텼어.
근데 이걸 버틸 필요는 없었어.”
이건 사실 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정말 많은 남성 내담자들이 이 말을 건넨다.
“남자는 울지 말아야 한다,”
“남자는 약한 모습을 모여선 안 된다,”
라는 목소리와 싸우는 이들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통을
지우고, 부정하고, 소멸하도록 스스로를 압박했다.
이런 구조를
Toxic Masculinity, 유해한 남성성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남자답지 못한 모습에 가해지는
비난과 조롱,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면
약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압박을 의미한다.
감정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유해한 남성성’은
결국 많은 남성들의 정신 건강을 망가뜨리고,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꺾어버린다.
그렇게 남성 자살률은 여성보다도 훨씬 높다.
잭은 초등학생 시절,
자신을 돌봐주던 당시 여고생이던 보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큰아들로서 바쁜 엄마, 아빠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되어 용기 내어
친구들에게 털어놨지만 돌아온 반응은 이랬다.
“그 누나 예뻤냐?”
“야, 너 되게 빨리도 경험했네.”
“솔직히 즐겼지? 너.”
잭은 그런 친구들을 민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쿨한 척, 농담처럼 웃으며 넘겼다고 했다.
그날 이후 더이상 그는 누구에게도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밤마다 반복되는 악몽조차.
그는 피해 사실을 부정당했고,
결국 오랜 시간 동안 감정의 문을 닫아버렸다.
상담 때 만나는 수많은 남성 내담자들은
감정을 억누르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도움받는 걸 부끄러워했다.
조금이라도 힘든 모습을 보이거나,
‘남자답지’ 못 한 모습을 보이면
철저히 무시당한다는 말에서
그들이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건넨다.
“지금 그 감정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다.
과거의 기억을 직면하는 작업,
억눌렸던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
스스로를 이해하고 돌보는 작업을.
잭은 최근 스스로를 위한 규칙을 만들었다.
매일 10분 명상하기, 감정일지 쓰기, 운동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말보다
‘힘들어도 괜찮다’라는 말을 매일 실천했다.
남성성을 ‘참는 것,’ ‘강한 척하는 것,’
‘울지 않는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이 첫출발이다.
이러한 연결고리는 많은 남자들에게
자기감정과 욕구를 무시하게 만들고,
그건 결국 자기 돌봄과 치유를 방해할 수밖에 없다.
상담은 ‘문제 있는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니다.
감정 코칭이자 관계 연습장의 장이다.
즉, 자기 계발이나 전략적인 자기 관리의 장소인 거다.
그러니 그대여.
혹시 버티고 있다면, 버티지 말기를.
감정을 드러내는 건 약함이 아니라 용기라는 걸 잊지 말길.
그리고, 편하게 이곳을 찾아와 주길.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으며, 사례와 상황 역시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했습니다.**